김대중(DJ) 정부의 햇볕정책이 시작된 1998년 이래 9년간 북에 지원된 남한 돈은 8조∼10조 원에 이른다. 이 거금도 북한 주민을 배부르게 하지는 못했다. 북한이 플루토늄 핵폭탄 1발을 제조해 실험까지 하는 데 2700억∼7200억 원의 직접비용이 들었을 것으로 국방부는 추정한다. DJ가 2000년 김 위원장을 만나려고 건넨 뒷돈이 대략 5000억 원이었다. DJ와 노무현 정권은 대북 지원자금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쓰였을 가능성을 부인하지만 세계 유일의 선군(先軍)집단에서 군수(軍需)가 민수(民需)에 우선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의 한 전문가는 햇볕정책을 계승한 노 정부가 북을 도와주고 따귀를 맞은 형국이라고 표현했다. 따귀만 맞는 것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현 정부 초기 대통령국방보좌관을 지낸 김희상 예비역 육군중장은 “북한은 핵무기를 배경으로 ‘전쟁이냐, 굴복이냐’며 일상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붕괴와 적화(赤化)통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 된다”고 경고했다.
북핵 제거 意志없는 정치권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북의 핵실험에 ‘포용정책 수정’으로 대응하려는 듯하다가 금세 번복했다. 열린우리당 사람들은 대북 제재 발목잡기에 여념이 없다. DJ는 “북의 핵실험은 미국 책임”이라는 선동을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부정(否定)이 두려워서 그러건, 이념적 정체성 때문에 그러건 간에 앞으로도 북핵 저지(沮止)를 오히려 방해할 것 같다.
일부 정치인은 “북핵은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는 주장까지 한다. 이들은 김 위원장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년 대선 때 친북좌파의 승리를 위해 ‘신북풍(新北風)’이라도 연출하려는 걸까. 남한 보수안보세력의 집권을 좌절시키려는 김 위원장과 교감해 ‘극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민족끼리’의 화해통일무드를 띄우면서 ‘징병제 폐지’ 선거공약이라도 내걸면 이번에도 대세를 장악할 수 있다고 계산하는 걸까. 유권자들이 그런 남북 사기극에 또 속아 넘어간다면 대한민국은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고 만다.
한국이 ‘주사파 공화국’으로 굴러 떨어지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과 함께 북핵을 제거하고 동북아 안정을 다지려는 미국과 일본도 어려움과 불안에 빠질 것이다.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 강화만으로 중국, 러시아 및 ‘사실상의 핵보유국’인 북한을 관리하는 데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노무현 좌파정부와의 신뢰관계가 크게 무너졌다고 해서, 그리고 한국 내에 반미(反美)기류가 있다고 해서 한미동맹에 염증을 내서는 미국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 북한은 비핵화 합의를 진작 깼지만 한국은 한미동맹 정신에 따라 비핵화를 견지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도 노 정부가 조기환수를 주장하기 시작한 때와 지금은 북한 핵변수가 크게 다르다. 노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해서 한국 자체를 감정적으로 대한다면 이는 다수 한국민의 대미 신뢰를 저버리는 처사다.
한국 지켜야 미일도 발 뻗고 잔다
한국이 북한 핵무장 정권의 위협에 절절매는 처지가 되고, 정치 경제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에까지 심하게 휘둘리게 되면 일본도 등이 시릴 것이다. 한일 우호와 가치 공유는 동북아 평화와 민주주의 신장을 위해 긴요하다.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해 일본은 한국인의 반일(反日)의식을 증폭시킬 요인을 적극 제거해야 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신임 총리는 할 수 있다.
우리 국민도 한미일 공조체제 복원 없이는 북핵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고, 그 화(禍)가 대한민국을 뒤덮을 것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북핵은 세계에 유례없는 ‘한강의 기적’마저 무(無)로 돌려 버릴 수 있음을 명심하고, 온 국민이 반(反)북핵을 위한 크고 작은 선택에 동참할 일이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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