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대만의 생존법

  • 입력 2006년 10월 17일 20시 16분


중화민국 건국기념일인 쌍십절(雙十節)에 대만의 부패 규탄 시위를 타이베이(臺北) 현장에서 목격했다. 붉은 티셔츠를 입은 시위대는 쌍십절 기념식장으로 향하는 내외빈 버스를 향해 ‘扁下臺(볜샤타이)’라고 쓰인 피켓을 흔들었다. ‘下臺’는 ‘단에서 내려오라’는 의미.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의 하야를 요구하는 구호다. 시위대는 엄지손가락(총통)을 아래로 향하는 제스처도 썼다.

총통 관저 앞 경축행사장은 예년과 달리 의원석과 총통석 사이에 흰 차단막이 쳐졌다. 총통이 연설을 시작하자 국민당 의원들이 연단으로 돌진하려는 시도를 했다. 총통이 연설하는 동안 사복 경찰들과 야당 의원들의 실랑이가 계속됐다.

미국에 매달리고 일본에 기대기

주최 측은 이날 시위에 150만 명이 참여했다고 발표했지만 경찰은 12만 명이라고 추산했다.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긴장된 모습은 없었다. 폭력을 찾아볼 수 없는 평화시위였다. 천 총통이 시위 압력에 밀려 하야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없었다. 대만인들은 부패 반대 운동이 차기 총통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더 관심이 높았다.

집권당인 민진당은 400년 전 중국 푸젠(福建) 성에서 건너온 이주자 후손들(토착민)의 지지를 받는다. 전체 인구의 약 60%. 1949년 마오쩌둥(毛澤東) 군대에 쫓겨 대만으로 온 본토 출신과 그 후손(대륙계)은 17%에 못 미친다. 국민당의 핵심 지지기반이다.

한 대만 관리는 부패문제에 관해 “천 총통의 부인 사위, 그리고 친척들이 조심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 관리는 “국민당이 집권하던 시절 부패가 훨씬 더 심했다”며 “대부분 본토 출신이 경영하는 언론의 과장 보도가 사태를 확산시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민진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푸젠 성 남부 말인 민난(민南)어로 질문을 한다. 천 총통은 부인과 사위의 부패 스캔들을 해명하는 기자회견에서 민난어를 썼다. 그래서 대만의 반부패 정쟁을 언어의 싸움, 토착세력과 대륙세력의 싸움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대만 정부는 최근 장제스(蔣介石)공항의 이름을 타오위안(桃園)공항으로 바꾸었다. 우자오셰(吳釗燮) 대만대륙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은 중화민국의 국부 장제스에 대해 “독재자”라고 서슴없이 지칭했다. 그는 “민주화 시대의 국가 관문 공항에 독재자의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만독립 지지세력은 중국 본토와 연결된 흔적을 곳곳에서 지우고 있다.

천 총통은 쌍십절 연설에서 “중국은 남동쪽 해안에 미사일 800기를 대만을 향해 배치해 놓고 있다”며 “중국은 군사적인 위협을 통해 총 한 발 안 쏘고 대만을 항복시키려 한다”고 비난했다. 우 위원장은 “프랑스와 몇몇 나라는 중국의 압력 때문에 무기를 대만에 팔지 않는다”며 “미사일방어 시스템을 비롯해 무기를 계속 공급해 주는 나라는 미국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만이 미국 의회에서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영향력을 가진 로비집단”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대만은 푸젠 성 해안의 미사일과 대만해협의 중국 잠수함을 방어하기 위해 이지스함을 살 계획도 갖고 있다.

“중국 對北제재는 립 서비스”

우 위원장은 “대만이 한때 원자력발전소 폐기물을 북한에 팔려다가 남한의 항의를 받고 그만두었다. 현재 북한과 대만 관계는 거의 제로”라고 확언했다. 그는 “중국의 북한 핵실험에 대한 비난과 대북(對北) 제재 참여는 국제사회에 대한 립 서비스”라고 깎아내렸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북한이 붕괴하는 사태라는 것이다.

그는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과 군사력 증강에 대해서도 우호적으로 논평했다. 1895년부터 1945년까지 50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대만에서 그런 반응을 듣는 것은 뜻밖이다. 대만을 질식시키려는 중국의 군사력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다 대만에 선(善)인 것처럼 보였다. 중국의 군사 위협과 외교적 목조르기를 당하는 대만으로서는 국가 안보를 위해 미국에 매달리고 군사대국 일본에 기대는 외교가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기류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황호택 논설위원이 신동아에서 만난 '생각의 리더 10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졌습니다.
가수 조용필, 탤런트 최진실, 대법원장 이용훈, 연극인 윤석화, 법무부 장관 천정배, 만화가 허영만, 한승헌 변호사, 작가 김주영, 신용하 백범학술원 원장,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

이 시대의 말과 생각
황호택 기자가 만난 생각의 리더 10인
지은이 : 황호택
가격 : 11,000 원
출간일 : 2006년 01월 01일
쪽수 : 359 쪽
판형 : 신국판
분야 : 교양
ISBN : 8970904476
비고 :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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