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저기 저기 저, 가을꽃 자리/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의 ‘푸르른 날’ 역시 애틋한 선율이 느껴지는 시다. 신들리지 않고는 못쓸 것 같은 선험적(先驗的)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다. 그러면서도 표현 하나하나가 감칠맛 나는 ‘시어(詩語)의 요리사’였다.
▷정지용과 서정주를 빼고는 우리 문학사(文學史)를 쓸 수가 없다. 이들에게 정치적, 이념적 굴레를 씌워 작품성과 연결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정지용은 ‘월북 시인’이라고 작품 그 자체를 평가받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이젠 거꾸로 ‘항일 시인’으로 추앙받기도 한다. 서정주는 ‘친일파’로 매도당하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을 지낸 신경림(71) 시인이 일침을 가하고 나섰다. “월북한 시인은 민족적 항일 시인, 남한에 남은 시인은 친일파라는 잘못된 인식이 우리 사회에 있어요.”
▷소설가 홍상화 씨는 작년 7월 남북작가대회에 참가했다가 백두산 천지에서 충격을 받았다. 거기서는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김남주 작 ‘조국은 하나다’)가 낭송됐다. 홍 씨는 ‘한국문학’ 2005년 가을호에 실린 ‘디스토피아’란 글에 “남한사회 좌경사상의 실체를 봤다”고 썼다. 그는 “증오심이 정의보다 더 열정적이고 더 투쟁적이라는 사실은 아주 슬픈 깨달음이었다”고 했다. 김남주의 그 ‘시’야말로 문학성이 있는지 없는지 문외한도 알 만하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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