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애덜먼 미 국방정책위원은 최근 주간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럼즈펠드 장관이 이라크전 상황에 대해 ‘깊은 부정(Deep Denial)’에 빠져 있었다고 증언했다. 지난여름 애덜먼이 “우리가 이라크전에서 지고 있다. 미군은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하자 럼즈펠드 장관은 자문자답(自問自答) 식 독백을 하다가 “우리는 미국 내에서의 전쟁에 질 수는 있지만 이라크에서는 질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36년 동안 럼즈펠드와 친구로 지낸 그는 “지금의 럼즈펠드는 내가 알았던 럼즈펠드가 아니다”고 했다.
▷‘깊은 부정’이란 현실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 상태를 비판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인간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 괴로울 때 무의식적으로 부정하는 방어기제가 작동된다. 잘못된 행위를 합리화하거나 복잡한 지식을 동원해 설명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럼즈펠드 장관은 자신에 대한 평가를 “역사가 고민하도록 놔두겠다”고 했지만 이라크전의 실패를 인정함으로써 인생을 실패로 마무리한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정책이 거의 없는 실패한 정부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실세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씨가 “참여정부가 시스템상 가장 안정된 정부”라고 자화자찬하는 것도 실패에 대한 깊은 부정에 해당한다. 노 대통령이 외교안보 정책과 부동산 정책에 실패한 청와대 참모나 장관들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의 잘못을 부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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