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 대비하기 30선]<10>노년에 관하여

  • 입력 2006년 11월 15일 03시 00분


《진실로 자기 자신 속에 고결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이 없는 자들에게는 모든 시기가 부담스럽다네. 그러나 자신들로부터 모든 좋은 것을 찾는 자들에게는 자연법칙이 가져오는 어떠한 것도 악으로 보일 수가 없지. 노년은 모든 사람이 도달하기를 바라면서도 일단 도달하면 비난하는 것이 되고 말았는데, 이러한 행위는 얼마나 모순된 것이며 어리석은가! ―본문 중에서》

제주도로 2박 3일의 수학여행을 떠난다는 경기 군포시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과 함께 탄 비행기 안은 무척 소란스러웠다. 그래도 비행기가 하늘로 둥실 떠오르자 마치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모두가 “와!” 하고 함성을 지르는 바람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열세 살짜리 저 아이들은 자기들 틈에 끼어 앉은 아줌마가 읽는 책 속에서 예순둘이 된 로마시대의 키케로가 여든넷 카토의 입을 통해 펼치는 노년 이야기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아니, 아이들은 자기들도 언젠가는 늙어 노년이 되리라는 것을 꿈조차 꿔본 일이 없을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저렇게 주름지고 늙은 사람이었을 거라고 여기는 아이들도 있으니까.

삼십대 중반의 젊은이들과 나누는 대화로 시작해 독백으로 이어지는 키케로의 노년 이야기는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해 신기하기까지 하다. 노년이 불행해 보이는 네 가지 이유, 즉 일을 할 수 없다, 체력이 떨어진다, 쾌락을 즐길 수 없다, 죽음이 멀지 않다에 대해서 조목조목 따지며 반박하고 있는 것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우리나라 노인들의 4가지 고통(四苦·빈곤, 질병, 역할 없음, 고독과 소외)에 생각이 미친다. 비록 육체는 쇠약하다 해도 사려 깊음과 이성과 판단력을 이용할 수 있는 노년의 힘! 유년기의 연약함, 청년기의 격렬함, 중년기의 장중함에 이어지는 노년기의 원숙함이 지니는 멋! 욕망, 야망, 다툼, 불화, 열망과의 전쟁이 끝난 뒤 맛보는 노년의 깊이! 덜 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 성숙함의 결과로 맞이하게 되는 노년의 죽음이 갖는 의미! 이 모든 것이 책 속에 녹아 있다.

입만 열면 무조건 한 수 가르치려 하고, 철없는 젊은 것들이 무얼 알겠느냐며 혀를 차대는 노년으로 인해 무척 피곤한 요즘이어서일까.

‘노년은 현인에게조차 가벼운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바보들은 자신의 악덕과 결점을 노년까지 지니고 간다’며 일갈하는 키케로는 차라리 후련하기까지 하다. 거기다가 노년의 퉁명함과 소통 불능과 분노와 까다로움은 결국 성격상의 결함일 뿐 결코 노년 그 자체의 결점이 아니라는 대목에 이르면 짝짝짝 박수를 보내고 싶다. 노년이라도 다 같은 노년이 아니라는 평소의 지론에 힘을 얻는다.

그러니 “노인들이 다 그렇고 그렇지 뭐!”라고 흉보고 있을 일이 아니다. 젊어서 잘살아야 하며 정성껏 살아내야 한다. 이렇게 ‘노년에 관하여’는 결국 ‘노년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로 이어지고, 세월이 흐르면서 늘어나는 것이 나이뿐이라면 얼마나 어리석은 삶을 사는 것인지 깨닫게 해 준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부담스럽고 버겁게 느껴질 때, 잘 늙어가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고민될 때, 노년 준비는 곧 돈이라는 소리에 막막하고 짜증이 날 때 슬쩍 책장을 들추면 어느 대목에서든 노년에 관한 한줄기 지혜의 빛을 만나게 되리라.

유경 프리랜서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 연구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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