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중국작가협회 신임 主席 톄닝 씨

  • 입력 2006년 11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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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의 작가단체인 중국작가협회의 주석으로 최근 선출된 톄닝 씨는 “주석이 됐지만 지금까지와 똑같이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라며 “앞으로 한국 작가들과의 교류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스자좡=하종대 특파원
중국 최고의 작가단체인 중국작가협회의 주석으로 최근 선출된 톄닝 씨는 “주석이 됐지만 지금까지와 똑같이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라며 “앞으로 한국 작가들과의 교류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스자좡=하종대 특파원
중국작가협회의 새 주석으로 선출된 톄닝(鐵凝·49·여) 씨. 중국에서 최고의 성가를 누리고 있는 대표적 지한파(知韓派) 작가이지만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세계 10여 개 언어로 그의 작품이 널리 번역돼 소개됐지만 한국어로는 아직 출간된 단행본이 없다.

12일 주석에 당선된 뒤 그가 묵는 베이징(北京)호텔을 2차례나 방문했지만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거듭 시도한 끝에 18일 허베이(河北) 성 성도 스자좡(石家莊)의 허베이성작가협회 주석 사무실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주석 당선 이후 외국 언론과의 첫 인터뷰라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마오둔(茅盾), 바진(巴金) 등 ‘중국 문학의 거장’이 맡던 중국작가협회 주석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그것도 40대 나이로 당선됐는데….

“운이 좋았어요. 아마도 다른 작가의 어려움을 잘 도우라는 뜻 같아요.”

그는 투표자 174명 가운데 161표를 얻었다. 절대적인 지지율이다. 당선 얘기부터 꺼내니 말을 더듬는다. 천성적으로 자기자랑에 약한 듯하다.

문학평론가 황웨이쭝(黃偉宗) 중산(中山)대 교수는 그의 당선을 “권위, 남성, 전통, 노인 시대의 종언”이라고 요약했다. 일류 작가이기도 하지만 살갑게 대하는 성품이 당선에 기여한 것 같다는 게 중국 언론의 분석이다.

―혹시 독신주의자인가요.

“아뇨. 아직 적합한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요.”

그는 아직 미혼이다. 함께 점심을 들며 옆에서 보니 굉장한 미인이다. 작가모임에 참석했던 한 여자 동료는 톄 씨의 속눈썹이 하도 길어 마스카라로 착각했다가 화장실에서 세수하는 것을 보고 진짜임을 알았다고 한다.

―‘톄닝 일기―서울이야기(鐵凝日記-漢城的事)’는 어떻게 쓰게 된 건가요.

“2003년 봄 아버지가 서울에서 작품전을 열 때 따라갔어요. 당시 중국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창궐했는데, 초청자가 ‘사스가 가라앉을 때까지 여기서 지내다 가라’고 해서 4월 28일부터 43일간 한국에 머물게 됐어요. 그때 보고 들은 걸 일기 형식으로 정리했죠.”

그의 부친 톄양(鐵揚·72) 씨는 국가1급 화가다. 서양화 전공인 그는 서울의 ‘밀알미술관’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졌다.

톄 씨는 1998년부터 부친 전시회를 따라 3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이야기’는 한국 하면 드라마, 영화, 김치, 축구, 복장만 아는 중국인에게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쓴 책이란다. 한국에 가 보니 절약정신, 예의도덕, 가정윤리, 노인공경 등 정신면에서 배울 게 더 많더라고 그는 설명했다.

―작품을 낼 때마다 상을 받았던데….

“글쎄요…. 평론가 얘기에 상당부분 공감해요.”

역시 자기 자랑은 잘 못한다.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그는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32년간 50여 편의 작품을 쓰면서 중국 최고의 문학상인 ‘루쉰(魯迅)문학상’을 2번이나 받는 등 지금까지 40여 차례나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

그의 소설 중 장편 ‘비 내리지 않는 도시(無雨之城)’와 ‘대욕녀(大浴女)’는 극히 드물게 100만 권 이상 팔렸다. 이 책은 올해 말경 한국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다.

톄 씨의 작품은 인물의 내면 묘사가 섬세하다. 이상과 추구, 희망과 동경, 모순과 아픔이 작품 속에서 모두 반사돼 나타난다. 온화하고 신선한 문학적 언어 리듬이 독자에게 시적정취를 저절로 맛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게 평론가들의 얘기다.

―어떻게 글을 쓰게 됐는지.

“제가 어릴 땐 한마디로 ‘광기의 시대(풍狂時代)’였어요. 문화대혁명 시절 읽은 책이라고는 마오쩌둥(毛澤東) 어록뿐이었죠. 그래도 부모님께서는 항상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글쓰기를 좋아했고….”

그는 문화대혁명을 ‘문화 없는 혁명’이었다고 정의한다. 문학작품은 모두 수거돼 제지공장에 던져졌다. 밤에 친구랑 몰래 제지공장 창고를 뒤져 책을 읽곤 했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발자크의 작품에 빠져들었다. 중학 시절 이미 소설을 썼다. 고교를 졸업한 뒤 발표한 ‘날아다니는 낫’은 중학교 때 이미 완성한 글이다.

―7688명의 회원을 거느린 작가협회를 주석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이끌 것인지….

“작가들의 어려움을 도우려 합니다. 특히 한국 작가와 교류를 대폭 확대하고 싶습니다. 물론 작가인 만큼 꾸준히 작품 활동도 계속할 겁니다.”

스자좡=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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