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의 전쟁 책임에 대한 인사청문회 질문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여기서 규정해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국회의원이 더 따지자 “남침이라는 사실은 이미 규정돼 있는 것”이라고 겨우 고쳐 말했다. 서면답변에선 “김일성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할 것이며 아직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았다”고 했다.
소련과 중국의 관련 자료가 1990년대부터 공개되면서 수정주의자들도 남침을 사실상 인정하게 됐다. 6·25는 인적 손실만도 무려 520만 명에 이르는 잔인한 전쟁이었다. 김일성은 그 전범(戰犯)이다.
이 씨가 사석도 아닌 대한민국 국회에서 ‘진실 흐리기’로 국민과 호국영령을 모욕하면서까지 북한 정권의 비위만은 거스르지 않으려 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다. 그는 어느 나라의 장관을 하려는 것인가.
북은 고문, 공개 처형, 여성 인권 침해, 외국인 납치 등도 벌이고 있다는 야당의원에게 그는 “내용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응수했다. 북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장로회, 천주교가 있고 교회를 짓는 것이 하느님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발전”이라고 답했다.
김정일 체제 지킴이 자처하나
세계가 북의 반(反)인권 상황에 대해 헛것을 보고 있으며, 수많은 탈북자 증언도 다 거짓이고, DNA 조사까지 된 일본과 한국의 납북 피해자들은 유령이었던가. 북의 교회는 전시용인데도 이를 하느님의 역사라고 하는가. 국민은 그런 장관을 위해 세금 내고, 아이들까지 물들게 해야 하나.
그는 남한 군사정부를 ‘통일의 장애물’이라고 비판해 왔다. 그렇다면 그에게 통일의 주체는 적화(赤化)만을 추구해 온 북한 정권이었던 셈인가. 이 씨는 “민주화를 이루어 낸 것은 정말로 대단한 보람”이라고 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인사말에서 밝히고 있고, 성공회대 총장 시절엔 운동권 경력자들을 대거 교수로 특채했다.
그런 사람이 ‘북한 군사체제는 왜 비판하지 않느냐’는 청문회 질문에 “우리 내부 체제를 비판하는 것과 북한을 비판하는 것은 다르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북이 뭘 하건 북의 편(김정일 집단의 편)에서 ‘내재적(內在的)’으로 생각하자는 얘기다. 김정일에 대해서는 “현 북한 지도자인만큼 공개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북의 특수성보다 우선하는 것이 자유 인권 행복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다.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그런 걸 요구했으면서 북에 대해선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장관이 되려 하고 있다.
정부가 유엔의 대북 인권결의안에 찬성한 데 대해 이 씨는 “정부가 찬성하는데 도의상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지 않느냐”고 했다. 북한 인권문제를 민족적 관점에서 포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덧붙였지만 수사(修辭)일 뿐이다. 2월 한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들고 나서면 북 체제에 위협을 주는 결정적 문제가 된다”고 걱정했던 그다. ‘민족적 관심’이 2300만 북녘 주민에게 있는지, 김정일 체제에 있는지 알 만하다.
그를 고집하는 대통령이 더 불안
그는 미국의 ‘핵우산’에 대해 부정확한 답변을 하다가 결국 “정확한 내용은 파악 못했다. 언론을 통해서만 봤다”고 덮었다. 그러면서도 “통일정책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다”며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의장직 겸임을 탐냈다. 대선 때 ‘돈 심부름’을 했던 흠이 작은 것도 아니지만 정권의 ‘도덕성 포장지’가 찢어진 지 오래라 덧붙이기도 뭣하다.
하지만 이 씨보다 그를 통일부 장관으로 점찍은 대통령의 의중이 더 못 미덥고 불안하다. 아직도 ‘북풍(北風)’으로 내년 대선 국면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이 깔려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재정 카드’를 어떻게 이해(理解)해야 하나.
대통령이 그에게 통일부 장관 임명장을 준다면 많은 국민은 또 한번 조롱당하는 분노를 느낄 것이다. 내정한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은 이미 이상한 나라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
▽반론보도문▽
본보의 지난 11월 21일자 ‘이재정 씨 마음의 행로’라는 배인준 칼럼 중 성공회대 교수 채용과 관련, 대학교 측은 교수 임용을 원칙적으로 공채를 통하여 공정하게 해왔다고 밝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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