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암 치료를 잘하기로 손꼽히는 MD앤더슨 암센터의 2인자인 홍완기 종양내과 과장은 한국 재계의 거물들을 줄줄이 거론했다. 모두 홍 박사에게 치료받은 환자들이다. 그는 폐암전문가로서 14가지 암 치료 및 연구 부서를 총괄하고 있다.
“암의 진행 과정은 자동차에 열쇠를 꽂으면 모든 기계적 장치의 시동이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단백질과 단백질 수용체가 결합해서 암이 생기지요. 암을 막으려면 열쇠가 자동차에 꽂히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 암센터의 존 멘델손 총장은 ‘자동차론(論)’을 폈다. 그는 20여 년 전 표피성장인자(EGF)와 종양증식인자(TGF-α)라는 두 단백질이 특정한 수용체와 결합해 암 종양이 증식한다는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이들은 멘델손 총장이 연세대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는 것을 계기로 방한했다. 연세의료원은 MD앤더슨 암센터와 자매병원 협약을 맺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27일 이들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났다.
○ “암은 없애기 힘들다. 다만 활동하지 못하게 할 뿐”
23일 밤 서울에 도착한 이들은 24일 이건희 회장과 함께 다녔고 주말엔 제주도에서 강연했다. 27일 연세대에서 멘델손 총장이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생에게 강연하는 등 5박 6일의 짧은 일정을 눈코 뜰 새 없이 보냈다.
“이 회장은 암 치료를 받은 뒤 스스로 금연했을 뿐만 아니라 임직원들도 금연에 동참하게 했습니다. 이건 매우 중요한 일이지요.”(홍 박사)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 등에 비해 금연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는 나라다. 흡연은 폐암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암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멘델손 총장이 시작한 ‘암 표적치료’는 암 치료의 개념을 혁신적으로 바꿔 놓았다.
의학계는 이전엔 암을 ‘없애야 할’ 대상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암세포가 있더라도 활동하지 못하면 치료됐다고 여긴다. 암 표적치료라는 개념이 그 계기가 됐다.
“대장암 폐암 유방암 등 암을 표적치료하기 위한 약들이 400가지 이상 나와 있어요. 이제부터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킨 세포까지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를 세계 의학계는 연구해야 합니다.”(멘델손 총장)
폐암과 대장암 임상실험에는 연세대를 비롯한 한국 의료진도 참여했다.
홍 박사가 이끄는 MD앤더슨의 암 연구자들은 유전적, 환경적으로 특정 암이 생길 위험이 높은 사람을 구분하고 약으로 암 발생 가능성을 차단하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두 사람은 저용량 아스피린으로 심장병을 예방하듯이 특정 암을 약으로 예방할 수 있는 시대가 언젠가는 열릴 것으로 믿고 있다.
○ “오케스트라처럼 협연이 중요”
세계에서 암환자들이 몰려드는 MD앤더슨 암센터는 텍사스 주 휴스턴 시에 있으며 의료진의 25%는 세계 각국 인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같은 명성은 철저한 ‘협진 시스템’ 덕분.
멘델손 총장은 “우리 병원의 목표는 홍 박사와 같은 좋은 연구진을 한 사람이라도 더 모아서 최대한 협력하게 하는 것”이라며 “우리 병원을 찾는 유방암 환자는 전 분야의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게 된다”고 소개했다.
홍 박사는 280명이나 되는 연구진을 이끄는 ‘멘터(mentor)’다. 한국 의학자 150여 명도 그의 손을 거쳤다.
이 센터는 연세의료원, 삼성서울병원과도 암 진료 분야에서 협진하고 있다. 멘델손 총장은 “한국에 환자가 많은 위암, 간암 등은 한국의 도움을 받고 한국 의료진은 MD앤더슨의 선진 의료기술에서 배우며 윈윈(win-win)한다”고 말했다.
바쁜 일정을 보내는 두 사람에게 건강을 어떻게 챙기는지 물었다.
“오전 4시에 일어나 5시면 병원에 오지요. 남들은 ‘미쳤다’고들 하는데 나는 일을 즐기고 일에서 행복을 느낍니다.”(홍 박사)
“저는 병원에서도 늘 돌아다녀요. 오늘 (인터뷰를 위해) 한 시간가량 앉아 있는 게 최근 가장 오래 앉아 있는 시간입니다. 생활 속에서 운동하는 것, 그게 중요하죠.”(멘델손 총장)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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