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선호하는 직업은 놀랍게도 프로게이머가 가장 많았다. 연예인, 경찰관 등 다양한 직업이 나왔다. 과학자가 되겠다는 아이는 산술적으로 0.5명이었다. 30명 중 한 어린이만이 과학자가 아니면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대답했다.
초등학교 학생이면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가 되겠다는 대답이 많게 마련인데 정말 어이가 없었다. “왜 과학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입을 모아 “그거 어렵잖아요!”라고 합창했다.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멍해졌다. 우리 교육이 어떻게 되었기에 과학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은 어디로 사라지고 호기심 많은 저 어린이들에게 어렵다는 생각이 박혀 있을까? 저 어린것들이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벌써 겪고 있는 것인가?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자책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흰 종이 같은 어린이의 마음에 과학을 왜 저렇게 어려운 대상이라는 생각만으로 색칠을 해 버렸을까? 과학교육이 무엇인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고교 학생의 이공계 기피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초등학생조차 경제적 이유를 떠나 그저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과학을 외면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과학이 어렵지 않다는 인상을 갖게 하려면 좀 더 부드럽고 인간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교육을 해야 한다. 과학을 과학만의 형식, 예를 들어 X+Y=Z처럼 딱딱하게만 전달하지 말고 인간 사회와 실생활에 스며드는 내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미국의 경우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하는 ‘프로젝트 2061’이 1995년에 시작됐다. 2061년에 완성하겠다는 야심 찬 교육프로그램이다. 1995년에 지구 가까이 온 핼리혜성이 다시 다가오는 2061년까지는 과학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바꿔 보겠다는 정부 지원에 힘입어 미국 과학진흥협회가 추진하는 야심작이다.
‘프로젝트 2061’에서는 전통적인 물리, 화학, 생명과학 등을 벗어나 ‘에너지와 사회’ 같은 주제 아래 물리 화학 생명과학이 인문학적 향기를 지니도록 다룬다. 미국만이 아니라 이웃나라 일본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2년 전에 시작했고 유럽 역시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사이언스 코리아’ 프로그램의 하나로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주관하는 과학기술과 인문, 사회, 예술의 만남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30일부터 12월 3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 인도양홀에서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란 전시회가 열린다. 과학이 보는 시간과 공간을 미술을 포함한 예술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하려는 행사이다. 과학기술부와 문화관광부가 주최하고 과학문화재단이 주관하며 과학문화진흥회가 총괄 기획해 연다.
전시회에서는 미술의 거장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마네, 모네, 피카소, 달리, 마그리트 같은 화가가 뉴턴, 아인슈타인, 보어 등 과학의 거장과 얼마나 같은 생각을 하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이해되기 전에 전달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과학은 이해하고도 전달되기가 어렵다. 과학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인문학적 접근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나만의 편견이 아니기를 굳게 믿고 싶다.
김제완 서울대 명예교수·과학문화진흥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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