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이 불로(不老)의 약을 구했다는 고사는 나이 드는 것을 꺼리는 태도에 고금(古今)이 따로 없음을 상기시킨다. 이 책의 저자가 한사코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역설하며 ‘안티 에이징’(나이 듦에 대한 거부)의 물결에 저항하는 것 또한 지구 반 바퀴 너머 독일에서도 얼마나 ‘안티 에이징’의 물결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영원한 젊음’에 대한 희구에는 동서(東西)도 따로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나이 들고 싶지 않은 것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본능’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불과 한두 세기 전의 평균수명이 지금의 절반쯤밖에 되지 않았다는 정황이 반드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만 한다. 진시황이 찾아 헤맨 것은 ‘나이 들지 않는 약’이라기보다 ‘죽지 않는’ 또는 ‘오래 사는’ 약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현실적으로 누리고 있는 권력의 영화를 좀 더 오래 지속하려는 ‘생명 연장의 꿈’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나이가 든다는 것 자체는 오히려 (죽으면 더는 나이를 먹을 수 없으므로) 축복이었을망정 외면하거나 피할 일은 아니었다. 노소(老少)를 막론하고 심지어 20, 30대의 청년들조차 한 살이라도 더 젊어 보이려고 기를 쓰고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을 심각한 모욕으로까지 받아들이는 지금 우리 사회의 풍경과는 전혀 맥락을 달리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행복한 나이 듦을 위한 열두 가지 지혜’가 어떤 심오한 철학적 성찰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어리석은 나머지 미처 깨닫지 못해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뻔히 알면서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무엇인가에 홀려서 행동에 옮기기 쉽지 않은 것일 뿐이다.
그 ‘무엇인가’를 저자는 ‘안티 에이징’이라 지목한다. 명시적으로 지적되어 있지는 않지만 곳곳의 행간에서 ‘안티 에이징’의 실체란 다름 아닌 소비자본주의가 만들어 내고 부추긴 환상에 기초한 욕망일 뿐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요컨대 젊음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니라 ‘젊음’이라는 소비 상품의 구매 충동일 뿐이며 ‘안티 에이징’은 정서적 태도이기 이전에 ‘젊음’이라는 상품의 소비 시장이나 다름없다.
저자는 책임, 자각, 움직임, 질서, 단순, 느림, 유머, 향유, 공감, 평정, 통찰, 연습이라는 ‘해피 에이징’의 열두 가지 덕목을 제시하지만 뻔한 도덕적 훈계를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욱 준엄하게 묻고 있다. 자신의 삶에서 주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젊음이라는 환상을 상품으로 팔아대는 소비자본주의의 노예가 될 것인가.
변정수 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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