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패전 이전의 일본 교육은 충군애국(忠君愛國)에 사로잡혀 청소년을 전장(戰場)으로 내몰았다. 그에 대한 반성으로 미국의 영향 아래 1947년 제정된 교육기본법은 ‘교육에 대한 국가의 부당한 지배와 정치적 개입을 배제하고 개인과 개성을 중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 법은 59년간 한 자(字)도 바뀌지 않은 채, 교전권(交戰權)을 부인한 평화헌법과 함께 전후 일본의 정체성을 상징해 왔다.
바로 그 법이 개정됐는데 포인트는 ‘애국심’ 개념의 삽입이다.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며, 이를 지키고 육성해 온 우리나라와 향토를 사랑하는 태도를 기른다’는 내용이다. 이 교육목표는 한낱 ‘선언’이 아니다. 실천할 애국의 내용을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회 도덕 등의 교과서를 바꾸고 어떤 형태로든 애국심에 대한 평가도 할 모양이다. 15일 일본 의회는 방위청을 성(省)으로 승격시키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이런 ‘역사적 전환’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우려를, 요미우리신문은 환영을 표시했다.
59년 만의 ‘애국심 교육’ 입법
아사히신문은 “애국심 교육과 함께 군사(軍事)우선국으로 변하는 흐름이 가속되지 않겠느냐”며 “교육기본법 개정을 밀어붙인 아베 신조 총리의 시선이 (평화)헌법 개정에 가 있다”고 지적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미래를 담당할 청소년이 역사 등을 존중하고, 일본인의 긍지를 갖고 커 주기 바란다”며 애국심 교육에 기대를 걸었다.
그동안 법조문이 없다고 해서 일본 교육에서 애국심이 부정돼 온 것도 아니다. 침략, 식민지배, 전쟁책임 같은 과거사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역사와 정체성을 폄훼하는 교육은 발붙이지 못했다. 교육기본법 개정 반대파도 국가가 애국심 교육을 강제하고 무리하게 평가를 할 때 빚어질 문제점을 주로 거론해 왔을 정도다.
젊은이들의 개인주의가 지나치다는 얘기가 일본 사회에서도 많이 들리지만 이 나라 청소년의 애국심이 유독 약하다는 증거는 없다. 한중일 3개국 청소년 관련 기관과 대학이 공동 조사해 올여름에 발표한 내용을 보면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전쟁이 나면 앞장서서 싸우겠느냐’는 물음에 일본 중·고·대학생은 41.1%, 중국은 14.4%, 한국은 10.2%가 ‘그렇다’고 답했다. ‘외국으로 나가겠다’는 답은 한국 10.4%, 중국 2.3%, 일본 1.7% 순이었다. 가상(假想)과 실제가 꼭 일치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조사결과를 뒤집을 근거 또한 없다. 그런데도 일본은 애국심 교육을 법제화했고, 한국은 일본의 국가주의 회귀(回歸)를 막연히 걱정할 뿐이다.
일본의 애국심 교육도 경계해야 하지만 대한민국을 자학(自虐) 자해(自害)하는 역사관이 지도자의 입에서부터 여과 없이 터져 나오는 현실은 국가적 불행이다. 대통령과 일부 교사들이 비슷한 목소리로 국가의 정통성을 의문시하거나 부정하니, 자라나는 세대의 ‘흰 솜 같은 마음’에도 애국심보다 국가허무주의가 더 쉽게 파고들지 않겠는가. 게다가 북의 적화(赤化)통일 기도를 두둔하고 비호하는 세력이 득세하거나 공공연하게 날뛰고 있다. 이러니 전쟁이 나더라도 지켜야 할 나라가 어디인지 헷갈리고, 애국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학대’ 세력의 득세
자본주의체제를 통해 세계에서 유례없는 후진국 탈출에 성공했음에도 사유재산권을 위협하고 아예 ‘가진 자한테서 더 거둬(빼앗아) 나눠 주겠다’는 식의 행태가 판을 친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대중에 영합하려는 정치는 결국 ‘돈과 사람의 해외탈출’을 확산시킨다. 국내의 파이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빼앗기지 않는 사람’도 더 못살게 된다. ‘돈의 애국심’을 앗아간 결과다.
준법(遵法)이야말로 일상적 애국임에도 법을 지키는 양민보다 법을 공격하는 세력이 더 떵떵거리는 세상이 됐다. 이를 바라보는 다수 국민의 가슴에서 애국심이 식어 가도 할 말이 없다.
일본이 잘못 가고 있나, 한국이 잘못 가고 있나. 일본이 더 위험한가, 한국이 더 위험한가.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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