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 독자인권위 좌담]여성 스포츠 사진 보도와 인권

  • 입력 2006년 12월 20일 02시 59분


본보 독자인권위원회 이지은 위원, 김일수 위원장, 최현희, 윤영철 위원(왼쪽부터)이 18일 동아미디어센터 14층 회의실에서 ‘여성 스포츠 사진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토론했다. 이종승  기자
본보 독자인권위원회 이지은 위원, 김일수 위원장, 최현희, 윤영철 위원(왼쪽부터)이 18일 동아미디어센터 14층 회의실에서 ‘여성 스포츠 사진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토론했다. 이종승 기자
《왜 아슬아슬한 포즈가 많은가. 꼭 그런 각도에서 잡아야 하는가. 실력보다 외모나 옷차림에 더 신경 쓰지 않는가. 신문의 여성 스포츠 선수 사진 보도를 두고 ‘성(性)의 상품화’란 지적과 함께 당사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본보 독자인권위원회는 18일 동아미디어센터 회의실에서 ‘여성 스포츠 사진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토론을 했다. 김일수(고려대 법대 교수) 위원장과 윤영철(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이지은(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최현희(변호사) 위원이 참석했다.사회=송영언 독자서비스센터장》

―여성 스포츠 사진 보도에서 나타나는 문제점과 인권 침해 요소부터 살펴보지요.

▽이지은 위원=여성 스포츠 기사도 목적은 정보 전달입니다. 정보를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사진을 함께 싣고 있지요. 그런데 기사의 정확성이나 역동성을 부각하기보다 여성의 성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사진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테니스 리듬체조 비치발리볼 피겨스케이팅 등의 경우 경기의 기술적 이해를 돕기보다 포즈와 각도에 더 신경을 쓴 사진이 대부분입니다. 독자의 시선이 이런 사진에 머물도록 정서적 심리적으로 유도하는 것은 스포츠 정신을 외면하는 눈요기에 불과합니다.

▽윤영철 위원=여성 골퍼 미셸 위 선수의 경우 사진을 빠뜨리지 않는 데다 기사에서도 ‘군살 하나 없는’ 식의 표현을 자주 보게 됩니다.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해도 언론 보도의 초점이 되는데 더 나은 성적을 올리고도 스폰서조차 찾지 못하는 골퍼도 많습니다.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으로 바뀌는 추세를 반영해 독자의 시선을 끌어 보려는 전략의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급지를 지향한다면 저급 황색지들이 초점을 맞추는 행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차별화된 사진의 게재와 충실한 기사 보도를 통해 선수와 경기에 대한 정보를 풍부하게 전달하는 것이 바른 방향입니다.

▽김일수 위원장=스포츠신문이 여성 선수에 접근하는 시각은 선정주의 상업주의 외모지상주의의 전형입니다. 자극적인 눈요기 사진을 제공하면서 기사는 언어적 은유에 머무는 모습을 보면 마치 천일야화(千一夜話) 식의 몽환적 분위기를 담아 내려는 편집 방침을 갖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스포츠의 기능이나 기록에 초점을 맞춰야 할 기사에서 ‘은반의 요정’ ‘뇌쇄적’ ‘매혹적’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사진에 담긴 선정성을 더해 독자의 황색지 지향성에 부응하는 관점을 보이고 있거든요. 사진을 전면에 가득 배치하고 제목만 부각할 뿐 기사는 찾아볼 수 없는 지면도 자주 눈에 뜨입니다.

▽최현희 위원=‘연예인은 얼굴만 믿고 머리는 없다’ ‘여성 선수는 운동은 잘하지만 외모는 아니다’ 등의 고정관념을 흔히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연예인이 머리도 좋구나’ ‘운동 선수가 얼굴까지 예쁘구나’ 식의 편견을 깨는 보도는 독자의 원초적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좋은 소재가 됩니다. 다소 선정적으로 보이더라도 충분한 목적과 의미가 있는지, 단순히 불순한 의도에서인지는 기자가 충분히 판단해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사진 아닌 기사는 어떤가요.

▽최 위원=금메달을 따 낸 주부 선수들을 ‘가정을 버리고’ 식의 뉘앙스로 표현한 보도를 보고 기분이 상했습니다. 직장 여성의 마음을 건드리는 이런 표현은 ‘간접 살인’ 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독자에게도 유쾌하지 않고 선수 본인에게도 상처가 될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독자를 함부로 보지 않겠다’는 양식이 중요합니다.

▽윤 위원=‘테니스의 요정’으로 불리는 러시아의 마리야 샤라포바 선수에 대해 독자들은 성적으로 어필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인도의 샤라포바’ ‘한국의 샤라포바’ 식으로 은유가 동원되는 모습에서도 입증되지요. ‘얼짱’ ‘몸짱’이면 그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게 되니, 그렇지 못한 선수는 결과적으로 차별받는 셈입니다. 예쁜 여자 선수가 뜰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인권 침해의 우려도 크다고 봐야 합니다. 한 번만 성적을 올려도 ‘실력에다 외모까지’ 하며 뜰 수 있겠지만 이후 성적이 저조할 경우 ‘외모에만 신경 쓸 뿐’ 식의 보도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여성 스포츠 사진 보도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이 위원=기능과 기록을 다투는 스포츠의 특성을 충실하게 뒷받침하도록 기사를 쓰고 사진을 싣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남성적 시각에 머무르지 않고 남녀노소 누구나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사실을 전달하는 사진 보도가 바람직합니다. 사진의 크기나 배열을 조절함으로써 불순한 의도가 개입할 여지를 차단해야 합니다. 편집 과정에서 선별하고 검증하는 장치가 요구됩니다.

▽김 위원장=보도 내용에 맞게 사진의 가치를 평가하고 선택하는 잣대가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성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선수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모든 독자가 선정성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신문은 감정과 감성에 호소해 육감적으로 접근하는 매체가 아니라 품위를 갖고 지성과 이성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해 줘야 합니다.

▽최 위원=기사가 없고 사진만 있는 보도는 원칙적으로 순수성을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기사에 사진을 함께 싣는다면 사진은 마땅히 스포츠의 내용을 보완하고 강화하는 상승효과를 목표로 한다는 인식을 지녀야 합니다. 리듬체조의 경우 고난도의 기술이라는 점을 도외시한 채 사진만 눈요기로 적당히 배치하면 곤란하지요. 고난도에 대한 설명이 사진에 담겨야 바람직한 보도입니다.

▽윤 위원=스포츠 현장은 아직도 남성 기자가 주류를 이루지만 점차 여성 기자가 늘어나는 추세도 엿보입니다. 이제 편집 라인에도 여성이 진출해야 합니다. 남성적 시각으로 기사와 사진을 고르는 단계를 넘어서도록 여성 기자와 간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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