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시인의 그림 읽기]꽃피는 시간

  • 입력 2006년 12월 23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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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점 반’ 그림 이영경·창비 펴냄
‘넉점 반’ 그림 이영경·창비 펴냄
시골의 시간은 자연의 시간에 가깝고 도시의 시간은 문명의 시간에 가깝다. 시골에서의 시간은 해와 달, 시냇물, 나무들의 리듬과 일치하지만 도시에서는 시계와 달력, 자동차와 빌딩의 속도와 일치한다. 거기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여기서는 숨 가쁘게 흐른다. 저기의 시간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윤택하게 하는 흐름으로 느껴지고 여기의 시간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느껴진다.

윤석중의 동시에 등장하는 이 아이는 동네 가게에 가서 몇 시인지 알아 가지고 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을 간다. 넉 점(4시) 반이라는 얘기를 듣고 돌아오면서 아이는 여러 가지를 구경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물 먹는 닭, 개미의 행동을 보면서 한참 앉아 있기도 하고 잠자리를 따라다니거나 분꽃 밭에서 한참 있다가 해가 꼴딱 진 뒤 돌아와서 엄마한테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라고 한다.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오는데 그 까닭은 물론 아이의 천진함 때문이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우리를 시계의 시간에서 해방시키기 때문인 듯하기도 하다. 아이는 시계의 시간에서 완전히 자유로우며 그리하여 잠자리와 닭과 분꽃의 시간에 산다. 그 시간 속에서는 꽃이 피고 잠자리가 날며 닭이 고즈넉한 한낮을 영원처럼 늘이며 운다. 꽃피는 시간이요 날개 치는 시간이다. 죽은 자동성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동성의 시간이다.

또 다른 관찰도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는 ‘물체의 속도가 빛의 속도에 근접할수록 시간이 느려지다가 빛의 속도와 같아지면 시간은 정지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렇다면 시간의 흐름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빛인 것이다.

티베트 불교에서도 참다운 상태에 있는 마음의 무시간성을 말하는데, 그럴 때 몸은 빛 속으로 해체되어 스스로 빛난다고 한다.

저 아이의 시간, 자연의 시간은 또 시적(詩的) 순간이라는 것과 비슷하기도 한데 균열과 상처와 마비에서 회복되는 순간 몸과 마음이 무한에 접속되는 시간, 내가 곧 모두이고 이것과 저것이 하나인 통일 속에 있는 시간, 둥근 시간, 싹트는 시간, 순간적으로 ‘앉은 자리가 꽃자리’가 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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