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홍승기]2006년 한국영화의 빛과 그늘

  • 입력 2006년 12월 23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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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 영화는 겉보기에 빛나고 다채로웠다. 괴물처럼 나타나 1300만 명을 먹어 치운 ‘괴물’이 있었고, 촌스럽지만 튼튼한 솜씨로 1230만 명을 불러 모은 ‘왕의 남자’가 있었다. 김혜수의 연기가 돋보인 ‘타짜’는 몹시 깔끔했다. 안성기 박중훈 콤비의 ‘라디오 스타’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불 켜진 극장 의자에서 한참이나 엉덩이를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괴물’이 한강 위를 휘돌아 솟구치던 사이, 비슷한 모양새의 블록버스터로 기획된 ‘한반도’는 안타깝게도 부진을 면치 못하였다. 2006년 한국 영화 흥행의 코드는 ‘소재의 흡인력’이었다. 한국 영화가 지금까지 많이 의존해 왔던 스타 마케팅의 한계가 드러나고, 스타의 파워도 소재의 지원을 받아야만 파괴력을 갖는다는 점이 확인된 한 해였다.

가수 비(장지훈)와 임수정을 내세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약세를 보인 반면 김아중 주진모의 ‘미녀는 괴로워’가 관객들을 끌어들인 것에서, 그리고 ‘왕의 남자’와 ‘괴물’의 성공에서, 또한 ‘한반도’의 실패에서 공통적인 것은 바로 소재의 흡인력이 여실히 입증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관객 1000만 명을 넘긴 영화가 두 편이나 등장했다고 해서 결코 영화계 살림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어차피 좁은 시장을 나눠 먹는 구조여서 전체적으로는 개봉 영화 수익률이 더 떨어지는 결과가 빚어졌다. 올 한 해 제작 편수가 100편을 훌쩍 넘겼으나 개봉한 영화와 개봉 못 한 영화 사이에도 명암이 갈렸고, 밀물처럼 들어왔던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태도 예상된다.

결국 대박 영화가 몇몇 스타 감독을 배출하고 이들이 해외 영화제로 불려 다니느라 바빠진 사이,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영화 관계자는 약간 더 힘들어질 현실 앞에서 더욱 어깨를 움츠릴 준비를 하고 있다.

배우들의 정치활동도 어느 해보다 활발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한다고 안성기는 ‘실미도’에서의 대사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성명서를 낭독하였고, 최민식은 ‘나라님’이 준 무슨 훈장을 반납한다며 엄포를 놓았다. 농민단체와 스타들이 연대하는 눈물겨운 ‘계급 통합’도 2006년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진 유별난 모습이었다. 어린 배우들도 선배 배우들에게 눈도장이라도 찍으려는 듯 FTA 시위장을 찾았고, 통상법 연구자들은 이들이 국가정책을 반대하고 나서는 이유가 진정으로 무엇일까 궁금해 하였다.

최근 10여 년간 한국 영화의 성장 동력은 우수한 인력에서 찾을 수 있다. 영리한 젊은이들이 영화계로 몰려 영화 산업 구조와 수준을 단숨에 끌어올렸다. 하지만 사회 발전과정에서 항상 겪는 일이지만, 한국 영화 약진의 이면에서 스크린 쿼터에 기대는 안일함도 생겨났다.

지나치게 부풀려진 예산, 일부 제작자의 반기업적 태도, 매니지먼트 회사의 원칙 없는 경영 등 구조적 불합리가 나타나기도 했다. 화려한 무대 뒷면에서 이슬만 먹고 살던 영화 스태프가 노조를 설립하였다는 소식은 한여름 청량음료 같은 상쾌함이었다. 이제 감독의 창작성이 약간 희생되고, 제작비 부담도 조금은 늘어날 터이나, 48시간 연속 촬영을 했다는 등의 ‘실황’은 전설로만 남을 일이다.

언제까지나 활기찬 인력의 희생 위에서 예술을 계속하자고 부르짖을 수는 없었다. 미국도, 영국도, 일본도 모두들 문화 콘텐츠를 군비(軍備)처럼 여기는 시대에, 한류의 흐름을 키우는 것이 국가전략인 시대가 되었다.

영화인 모두 모호한 정치적 구호에 매몰되기보다, 날렵한 몸매로 모두가 혜택을 누릴 산업의 지평 확대에 더욱 몰두하기를 기대해 본다.

홍승기 변호사·법무법인 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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