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때부터 지배세력 교체를 외쳐 온 현 ‘지배계급’은 ‘많이 배우고 출세한 분’ ‘귀족계급’ ‘검찰 재계 언론 등 특권집단’과 나머지 국민을 끊임없이 가르며 계급투쟁에 앞장섰다. 좌우(左右)는 기본이고 친북-반북, 지배-피지배, 강남-비(非)강남으로 찢겨 너의 성공이 나의 박탈로 간주되는 형국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계급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결코 갈등할 수 없다. 자식 기르는 ‘부모계급’이라는 점에선 같은 이해(利害)관계다.
보내고 싶은 학교·직장 못 만드나
길바닥에서 아무나 붙잡고 새해 소원을 물어보면 십중팔구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다. “별거 있나. 애들 공부 잘하고, 직장 별 탈 없으면 되지.”
교육문제도 정치적 이념적 잣대를 떠나 부모계급에서 바라보면 해답이 쉽게 나온다. 돈이 많든 적든, 머리가 좋든 나쁘든 애들이 공부 잘하게 학교에서 잘 가르쳐 주길 바라는 게 우리나라 부모계급이다. 지난해 세계의 교육수준을 연구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안드레아스 슐레이허 씨는 “1960년대엔 아프가니스탄 수준이던 한국 경제가 남미를 능가한 비결은 한국인들이 배움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벽을 못 견디기 때문”이라고 했을 정도다.
“특권과 반칙을 가장 확실하게 해체했다”고 자부하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에 불과한 수많은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다. 전직 교육 수장들 역시 부모계급인지라 공부 잘 시킨다고 소문난 외국어고에 애들을 보냈다. 굳이 외고가 아니더라도 그 못지않게 경쟁력 있는 학교가 동네마다 있다면, 없는 돈에 기를 쓰고 애들을 학원에 보낼 이유가 없다.
지배계급은 계층 간 위화감 때문에 평준화를 깰 수 없다고 우기지만 학군이 좋아 강남 집값이 폭등했다는 걸 모를 사람은 없다. ‘수준 높은 학교가 얼마 없거나 학군이 고정돼 있을 때 계급문제가 심화된다’는 영국 ‘시장과 공공기구를 위한 센터’의 2005년 연구대로다.
애써 대학까지 졸업시켜도 부모계급의 역경은 끝나지 않는다. 취직이 안 된다며 뒤늦게 공무원시험에 매달리니 4년간 등록금만 받아먹은 대학 교수들 얼굴이 궁금해진다. 정부는 올해 일자리 30만 개 창출을 위해 독거노인 도우미 같은 ‘사회적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지만, 당신 자식 같으면 진정 만족스럽겠냐고 묻고 싶다.
경제 역시 부모계급에서 생각하면 한없이 단순해질 수 있다. 제각기 능력과 적성에 따라 성실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애들 공부시키고 형편 피는 대로 집도 늘려가겠다는 희망만 있어도 행복할 수 있다.
일자리를 늘려 주는 해법도 이미 나와 있다. 국정브리핑은 “(언론에서) 성장 성장 하는데 하우(how)가 빠졌다”며 “규제 풀고 부양책 내놓아 반짝 경기라도 즐기잔 말인가” 했지만 세계은행은 바로 그 규제가 성장의 주요 장애물이라고 2004년 밝힌 바 있다. 노동 및 생산시장 규제 폐지, 재정 균형, 기술 훈련의 세 가지가 OECD 일자리 처방이다. 균형 재정은커녕 나랏빚을 2002년 133조6000억 원에서 올해 306조 원으로 늘린 대통령이 “부동산 말고는 꿀릴 게 없다”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내 자식의 피눈물은 못 본다
그렇다고 능력도 없는 정부가 국민을 못난 자식 대하듯 ‘다 해 주겠다’고 설치지는 말기 바란다. 정부든 부모든 자식에게 한껏 성장할 기회는 마련해 주되 제 힘으로 선택하고 책임지도록 하는 게 제대로 된 모습이다.
집권계급이든 집권을 꿈꾸는 계급이든 더는 국민을 오만 가지 계급으로 솎아 내 정치적 이념적 이윤을 착취할 생각도 말기 바란다.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는 하나의 계급 ‘대한민국 부모계급’이 있다. 집권계급이 스스로 부모계급의 일부가 돼서 내 자식이 살고 싶은 나라 만드는 게 그리 힘들단 말인가.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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