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예산 낭비 사례집

  • 입력 2007년 1월 8일 19시 59분


영국의 식민지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대부분 독립했다. 그러나 1935년 372명이던 영국 식민부(植民部) 직원은 1954년 1661명으로 늘어 있었다. 직원들이 쓸데없는 일을 마구 만들어 낸 결과다. 당시 이를 관찰한 영국 경제학자 노스코트 파킨슨은 “공무원 수는 업무의 양에 관계없이 늘어난다. 공무원들이 승진하려면 조직이 커져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파킨슨의 법칙’이다.

▷‘예산 지출은 수입만큼 늘어난다’ ‘예산 심의에 필요한 시간은 예산액 규모에 반비례한다’는 파킨슨 제2법칙, 제3법칙도 있다. 하나같이 공(公)조직의 비능률에 대한 지적이지만 나름대로 통계적 검증을 거쳤다. 이런 현상에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중앙부처 공무원이 2만5000여 명 늘었다. 올해도 3000명 이상 추가로 늘릴 계획이다. 그런데도 각 부처가 2010년까지 더 늘려 달라는 인원이 총 12만 명에 이른다.

▷기획예산처가 예산 낭비 사례집을 냈다. 노동부는 160억 원짜리 건물을 사들여 2년간 쓰지 않고 방치해 관리비만 3억5000만 원을 날렸다. 건물 이용에 관한 사전 계획이 치밀하지 못해 생긴 세금 낭비다. 한강시민공원 광나루지역은 표고가 낮아 매년 2, 3차례 침수되는데도 한강시민공원사업소는 2억 원 이상을 들여 테니스장을 만들었다. 테니스장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사업소는 농구장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밖에도 기막힌 사례가 많지만 이 또한 빙산의 일각 아니겠는가.

▷현 정부 들어 ‘혁신 전담’ 공무원 200여 명이 탄생했다. 이 정부는 혁신을 외치면서 담당 공무원을 늘리는 것을 ‘혁신 실적’으로 착각하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민생(民生)에 도움을 못 주면서 예산을 낭비하는 ‘큰 정부’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여전한데도 대통령은 갑자기 공무원을 칭찬하기에 바쁘다. 행정부와 국회는 올해 예산을 짜면서 세금을 더 걷고 국채를 찍어 적자재정을 확대했다. 그 뒷전에서 허리를 펴지 못하는 납세자들만 딱하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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