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 내용으로 보아 개헌 발의 의지가 매우 강해서 올 상반기는 개헌 성패와 관계없이 개헌 정국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정식으로 발의하면 헌법상 20일 이상의 공고기간을 거쳐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국회가 개헌안에 대한 의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야당이 반대하면 국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을 수 없어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는 어렵다.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의하는 것은 헌법 파괴 행위이므로 허용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지금 개헌 이슈를 들고 나오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개헌에 관한 자신의 대선공약을 지킬 뜻이 있었다면 왜 지금까지 미루다 이제야 개헌을 제안하는지 어리둥절하다. 개헌은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헌정질서의 기초와 관련된 중대사이다. 그래서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의 동의가 절대적인 필요조건이다. 또 국민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대통령이 불쑥 개헌 제안을 하는 것은 순수한 의도로 보이지 않는다.
사분오열되는 여당에 쏠리는 국민의 곱지 않은 시선을 개헌문제로 돌려 보려는 것은 아닌지 의혹이 간다. 개헌 찬성과 반대 세력을 갈라 정계개편을 추진하려는 노림수인지 모른다. 국정의 실패로 약해진 자신의 국정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한 궁여지책일 수 있다.
대통령 임기 4년 중임제는 대통령 말대로 책임정치를 실현하고 국민에게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심판권을 주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헌정사적 의미를 가졌던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이제 사명을 다했다는 대통령의 지적도 옳다.
그런데 올해 안에 개헌을 성사시키지 않으면 20년 후에나 개헌 논의가 가능하다는 대통령의 말은 대통령 특유의 독선적인 단정으로 느껴진다. 개헌에 관한 국민의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면 개헌은 집권당이나 일부 정치세력이 반대한다고 막을 수 없다. 1987년 현행 헌법의 대통령직선제 개헌도 그렇게 이뤄진 것이 아닌가.
지금 과연 개헌에 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볼 수 있는가. 국민의 관심사는 개헌보다는 올 12월 19일의 대통령선거이다. 대선을 앞두고 정권교체의 국민적인 열망이 서서히 결집돼 가는 상황 속에서 개헌문제로 다시 국론분열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은 정치공작일 수는 있어도, 그 밖의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다.
다음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편하게 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한 뒤 물러나고 싶다는 후덕한 말이 어쩐지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헌을 다음 정권에서 성사시킬 수 있도록 한발 물러나서 지켜보고 지원하는 것이 대통령의 갈 길이고, 대통령이 생각하는 필요한 개헌을 성사시키는 길이다.
대통령의 임기와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키자는 제안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임기를 일치시키자는 주장에는 국회가 여대야소(與大野小)로 돼야 대통령의 국정수행이 쉬워진다는 희망이 깔려 있다. 임기를 일치시킨다고 해서 그런 희망이 언제나 충족된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의 헌정사에서 보듯이 여소야대(與小野大)의 국회 구도가 되어 국회를 야당이 지배하는 상황이 오면 대통령의 국정수행은 4년 내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여대야소 선거 결과가 언제나 순기능만 갖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경험했듯이 대통령과 국회가 제대로 견제 균형을 이루지 못한 채 국회가 정부의 시녀 노릇을 하게 되면 대통령의 독재를 낳아 이른바 ‘공화적 군주제’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노 대통령처럼 국민의 여론에는 전혀 신경을 안 쓰고 ‘선출된 권력’을 내세워 헌법상의 모든 권한을 임기 끝까지 철저히 행사하겠다는 독선적인 대통령이 또 나올 경우 임기 일치는 대의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적신호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차등제도는 대통령 임기 중에 치러지는 선거를 통해 국민의 뜻을 국정에 투입(input)하는 민주정치의 기능을 한다. 여론 조사에서 표출되는 가변적인 경험적 국민의사와는 달리 선거에서는 잠재적 국민의사가 경험적 국민의사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통령 임기 중에 실시되는 각종 선거는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국민이 평가하고 심판할 기회를 갖는다는 순기능도 한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은 임기차등제도에 따른 잦은 선거가 아니라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만을 고집하는 정치인들의 비타협적인 정치행태에서 찾아야 한다. 타협과 절충의 정치로 정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임기를 일치시켜도 비생산적인 정치는 바뀔 수 없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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