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서쪽으로 북아메리카를 지나고 시베리아를 건너 지구를 한 바퀴 돌다 보면 재갈매기들이 점차 덜 재갈매기처럼 보이고 점점 작은재갈매기를 닮아간다. 중간 단계에서 이 새들은 상호 교배를 한다. 그러나 이 사슬의 양쪽 끝인 유럽 대륙에 이르면 이들은 전혀 다른 두 종으로 나뉜다. 그렇다면 세계 어느 지점에서 이 새들이 별개의 종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을까.
‘이기적인 유전자’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씨의 최근 저서 ‘조상 이야기’에 나오는 사례다. 그는 갖가지 새로운 개념을 창안하기로도 유명한데 그중 상당수가 사회과학과 문화인류학의 영역에 활용되고 있다. ‘복제 가능한 문화요소’를 지칭하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된 ‘밈(meme)’도 그중 하나다.
그런 그가 재갈매기를 통해 하려는 말은 무엇일까. 그는 ‘불연속적 정신의 독재’라는 새 개념을 꺼내 들었다. 인간은 침팬지와 다른 종이다. 그러나 수백만 년 전 하루아침에 침팬지와 인간이 나뉜 것은 아니다. 긴 시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차이가 축적됐을 뿐이다.
도킨스 씨는 불연속적 정신의 ‘독재’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의도를 명백히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세상만사의 개념을 뚜렷이 나눔으로써 주변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나누는 데 집착하다 보면 정신의 독재가 나타난다. 영국에서는 10만 명당 400명이 독감에 걸릴 경우 공식 전염병으로 지정된다. 왜 400명이 되는 순간 특별한 관리를 받아야 하는지는 뚜렷한 근거가 없다.
인간 심리와 사회 현상에 이르면 더더욱 세상일이 ‘음화(陰畵) 대 양화’보다 스펙트럼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은 흔히 네 편 내 편을 나누려 시도한다. 민주당원이면서 공화당 정책에 상당수 크로스보트(교차투표·현안에 따라 상대 정파의 정책에 찬성표를 던지는 것)하는 조지프 리버먼 미 상원의원 같은 존재가 우리에겐 없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케이토연구소는 지난해 ‘리버테리언(Libertarian) 유권자’라는 보고서를 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10∼20%가 경제적 이슈에선 보수이지만 개인적 자유에는 진보적 성향을 보여 종래의 보수·진보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리버테리언’ 유권자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같은 스펙트럼의 차이를 살피는 보고를 찾아보기 힘들다.
나아가 나누기의 독재는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듯하다. 연예인 이혼을 다룬 기사의 댓글을 찾아보아도 ‘둘 다 잘못이 있네요’라고 쓴 글에는 ‘도대체 뭘 말하자는 것이냐’는 반응이 따르기 십상이다. 한쪽의 원천적 과오를 찾아내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투다.
올 한 해 또 용(龍)들의 전쟁으로 달아오를 것 같다. 연말에 우리는 몇 년간 나라를 이끌어 나갈 새 지도자를 보게 될 것이다. 소망을 갖는다면, 새 지도자는 국민을 갈라 마음에 맞는 사람만을 상대로 얘기를 늘어놓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다양한 국민 하나하나의 섬세한 결을 어루만지고 그 모두를 향해 발화(發話)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소망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을 ‘연속적 정신의 민주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유윤종 국제부 차장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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