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곧 정치라고 했던가. 하지만 대통령은 정치가 말로 안 된다는 걸 보여 줬다. 민생을 위한 실적(實績)이 없고서는, 달콤한 말일수록 국민의 실망과 혐오를 키운다.
역시 결정타는 경제였다. 국민을 20 대 80으로 가르는 수(數)의 정치, 심지어 2% 대 98%로 나누는 포퓰리즘을 즐길수록 더 힘들어진 쪽은 서민이다. 중산층 70% 시대, 신성장 7% 달성, 일자리 250만 개 창출 같은 공약은 일찌감치 휴지통에 던져졌다. 청년실업률 8% 안팎, ‘그냥 노는 남자’ 100만 명 돌파, 비(非)경제활동인구 사상 최대 기록(1478만 명)이 실제 상황이다. 대졸 이상 고학력 비경제활동인구는 226만 명으로 2000년보다 67만 명(42%) 늘었다.
4년간 순증(純增)한 일자리는 98만 개다. 공약의 반 토막이다. 정부가 지난해 세금 1조5000여억 원을 넣어 창출했다는 일자리 52만 개 가운데 81%는 1년 미만 임시직이다. ‘사회적 일자리’라는 말 포장이 유치하다.
‘선배님, 대통령 뽑고 행복했나요’
그래도 대통령은 “부동산 말고는 꿀릴 것이 없다”고 한다. ‘몸짓까지 섞어’ 할 말을 다 하겠다고도 한다. 말릴 수는 없다. 최고 국정을 맡긴 국민의 업보다. 무엇에 혹하고 속아 충동구매를 했건, 찍고 나면 선택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날, 2002년 12월 19일. 막 20세가 된 청년부터 25세 미만까지는 난생 처음 대선 투표권을 행사했다. 이들 가운데는 ‘내 손으로 대통령을 만들어 낸’ 첫 경험에 기뻐 춤춘 젊은이가 많았을 것이다. 그 감동은 4년 1개월이 흐른 오늘도 살아 있는가.
“나는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취직을 지망했던 5개사에 모두 합격한 졸업반 대학생이 행복에 겨워 말했다. 다른 대졸 예정자는 처음 지원한 대형 증권사에 쉽게 붙자 “이렇게 간단히 결정돼도 괜찮은 건지 오히려 맥이 빠졌다”고 했다. 기업들 간에는 학생 쟁탈전이 벌어지고, 대학 3년생을 상대로 한 구인(求人)설명회도 일찌감치 시작됐다. 작년 말 일본 아사히신문이 크게 보도한 그 나라 얘기다.
지난 대선 때의 첫 투표 경험자였던 20대 전반 세대는 어느덧 20대 중후반이 됐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자신, 가족, 세상에 대해 더 큰 짐을 지게 됐을 것이다. 이들 입에서 ‘나는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우리 경제의 후퇴, 민생의 악화는 목표와 수단을 혼동하고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읽는 ‘이해할 수 없는’ 무능 또는 코드병(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면 기업이 쉽게 투자하도록 규제를 걷어 내는 게 급선무다. 그러나 정부는 기업들이 추진해 온 수십조 원의 수도권 투자계획을 ‘균형 발전’이란 명분으로 가로막고 있다. 결과는 투자와 일자리의 해외 유출이요 ‘균형 퇴보’다.
개헌을 말할 때는 “변화의 속도가 중요하다”는 대통령이 막상 시급한 기업투자에 대해선 속도를 말하지 않는다. 이러고서야 세계적인 기업 속도전(戰)에서 이기고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후보 시절 “반미(反美)면 어떠냐”에서부터 최근 북한의 미사일과 핵에 대해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까지도 결국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국내외 자본이 이런 정부를 믿고 더 많이 투자할 턱이 없다.
좋은 시대, 나쁜 시대를 가를 손
새삼스럽게 좌파 정권이라느니, 잘못된 이념코드가 문제라느니 해 봐야 이젠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U턴을 수없이 촉구해 온 헛고생이 허무할 뿐이다. 정권의 코드 위선(僞善)이 국민을 힘들게 할수록 가장 오래 피해자로 남을 세대는 젊은층이다. 오래 살 것이기 때문이다.
11개월 앞으로 다가온 올해 12월 19일엔 만 19세부터 25세 미만까지가 새 대통령을 뽑는 첫 시험지를 받아 든다. 좋은 시대에 태어나지 못했다면 좋은 시대를 만들 일이다. 대선은 심심풀이나 기분 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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