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팔순 기념공연 준비하는 한국춤 명인 이매방 선생

  • 입력 2007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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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넘은 재봉틀 “요즘도 동대문시장에서 옷감을 떠다가 오전 한두 시까지 바느질을 합니다.” 한국춤의 명인 이매방 선생이 팔순 기념공연을 앞두고 제자들의 무대 의상을 손수 짓고 있다. 그는 “바느질이 잘못되면 금방 터지고, 옷의 색깔이나 모양이 잘못 나오면 춤을 잘 춰도 때깔이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100년 넘은 재봉틀 “요즘도 동대문시장에서 옷감을 떠다가 오전 한두 시까지 바느질을 합니다.” 한국춤의 명인 이매방 선생이 팔순 기념공연을 앞두고 제자들의 무대 의상을 손수 짓고 있다. 그는 “바느질이 잘못되면 금방 터지고, 옷의 색깔이나 모양이 잘못 나오면 춤을 잘 춰도 때깔이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이 재봉틀은 100년도 넘은 거예요. 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 왔던 것이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빌라. 한국춤의 명인 우봉 이매방(80) 선생은 햇빛이 따스하게 비껴드는 거실 베란다 창문 옆에 놓여 있는 미제 ‘싱거(SINGER)’ 재봉틀 앞에 앉아 있었다. 늘 공연을 앞두고 제자들의 의상과 소품을 손수 준비해 온 노(老)무용가는 요즘도 오전 한두 시까지 바느질을 멈추지 않는다.

“올해 팔순이지만 아직도 무대는 무서운 곳이란 생각이 들어. 요새 애들은 소꿉장난같이 생각하지만 예인(藝人)에게 무대는 사형대나 마찬가지야. 무대를 준비하려면 춤만 잘 추면 되는 게 아니라 바느질부터 음악준비까지 다 잘해야지. 내가 죽으면 이런 거 직접 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매방 선생 사진더보기

25일 오후 7시 반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인 이매방 선생의 팔순기념 공연 ‘무선(舞仙)님께 드리는 헌무(獻舞)’가 열린다. 승무, 기원무, 입춤, 살풀이춤, 장검무, 승천무, 대감놀이, 사풍정감, 3북, 5북 등 예인으로 살아온 선생의 춤 인생을 집약하는 무대다.

5년 전 위암에 걸려 위의 3분의 2를 절제해야 했던 선생은 60kg의 몸무게가 44kg까지 줄어든 상태. 긴 병치레로 쇠약해진 그는 “목욕탕에 있으면 해골이 서 있는 것 같아 웃음밖에 나오지 않아. 죽으면 이틀 만에 뼈밖에 남지 않을 것 같다”고 씁쓰레해한다.

이번 공연은 원래 제자들이 스승에게 헌정하는 무대로 기획됐다. 그러나 그는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번 무대에서 ‘승무’와 ‘입춤’을 추기로 했다.

○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

선생은 인터뷰를 마치고 2층에 올라가 제자들의 연습을 지도했다. 굿거리장단에 맞춰 장삼자락을 휘날리는 그의 춤사위에선 암 투병을 했던 사람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춤 지도를 마친 선생은 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제자들을 매섭게 호령한다.

“내가 죽으면 다들 제 맘대로 춤출 놈들이야. 그렇게 배우려고 하다가도 문화재 ‘이수증’만 타면 더는 안 오는 놈들이 하나 둘이 아니야. 나처럼 평생 외길로 춤만 생각해도 될까 말까 한데. 다들 어떻게 하면 박수를 받을까, 명예를 얻을까, 돈을 벌까 궁리만 해. 그런 정신 갖고 무슨 춤을 춘다고 해.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고운 법이여.”

‘욕쟁이’로 소문난 선생은 말문이 터지자 거침이 없었다. 그는 무형문화재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비난했다.

“일본 사람이 그러더라고. 한국에는 무슨 무형문화재가 그리 많으냐고. 정말 너무 엉터리 가짜 문화재가 많아. 어떻게 춤 스타일이 다른 두 사람이 같은 선생의 춤 보유자로 지정받느냐고. 어느 게 진짜 문화재야? 얼마 전에는 한 스님이 내게 두세 달 배우고 가더니 ‘승무’로 지방에서 문화재로 지정받더군. 차라리 무형문화재 제도를 없애는 게 낫지. 나도 내놓고.”

○ 한국춤의 아름다움은 정중동

“한국춤의 아름다움은 ‘정중동(靜中動)’에 있어. 우리 몸에서 배꼽이 중(中)이지. 배꼽 밑은 정(靜)이고, 위는 동(動)이지. ‘정’은 여자고, 밤이고, 음이라면, ‘동’은 남자고, 낮이고, 양이야. 인생에 낮만 필요한 게 아니야. 밤이 있어야 술도 마시고, 섹스도 하고, 도둑질도 하고, 잠도 자고 하지.”

그는 한국 전통춤의 멋은 기와지붕이나 한복의 선처럼 곡선의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그는 “직선의 움직임이 기본인 서양춤이나 최승희류의 신무용은 명랑하고, 활발하고, 밝고, 박력은 있지만, 한국 전통춤에서 볼 수 있는 뭔가 찌르르하고, 요염하고, 이상야릇한 기운이 없다”고 말했다.

“‘승무’도 500여 년 전에 신방초 선생이 창작한 춤이에요. ‘장검무’는 매란방에게 배운 춤사위를 바탕으로 제가 창작했고요. 한국춤의 발전을 위해 창작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우리의 전통춤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입니다.”

■ 이매방 선생은b

1927년 전남 목포에서 출생해 7세 때부터 목포 권번에 들어가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대조 선생에게서 승무, 박용구 선생에게서 승무북, 이창조 선생에게서 검무를 배워 춤의 바탕을 닦았다. 1960년대 ‘3고무, 5고무, 7고무’ 등을 창안해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1990년 중요무형문화재 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1984년 옥관문화훈장,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받았다.

한국무용가인 부인 김명자(65·승무살풀이춤 전수조교) 씨와의 사이에 딸 현주(33·승무살풀이춤 이수자) 씨를 두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아영(서울대 영문학과 3학년)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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