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시인의 그림 읽기]모차르트, 인류의 지복(至福)

  • 입력 2007년 1월 2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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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피리’ 그림 나탈리 노비, 베틀·북 펴냄
‘마술 피리’ 그림 나탈리 노비, 베틀·북 펴냄
지구상의 어디에선가 모든 시내와 강의 발원이 되는 샘물들이 솟아나고 있는 걸 상상하면 나는 한없이 즐거워지면서, 내 가슴에서도 생명의 샘물이 솟아나기 시작하는 걸 느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샘물들은 지상 생물의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고 또한 어린 시절에 그 발원지에서 샘물이 처음 소리 없이 솟아나는 걸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구를 신비로운 별로 만드는 것 중에 가장 강력한 것―샘물의 그 첫 솟구침을 두 눈으로 본 뒤 그 감각 지각을 통해, 지상의 샘물들은 끊이지 않고 내 가슴속에서 솟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 피리’에서 파파게노와 파파게니가 만나 정말 좋아서 서로의 이름도 제대로 부르지 못해 파파-파파-하면서 포옹하려는 장면인데, 별것 아닌 이야기가 모차르트의 음악 때문에 살아난 가극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오페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그래서 잘 모르지만, ‘마술 피리’는 오페라를 그 스토리가 아니라 음악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가령 바그너의 가극들과 비교해 보면 좋을 듯한데, 나는 바그너를 아주 싫어해서 바그너에 대한 니체의 혹독한 비판―예컨대 “바그너의 음악은 요컨대 나쁜 음악이요, 아마도 그동안 나온 음악 중에서 가장 나쁜 음악” “음악의 크나큰 타락을 대표” “최면술적 속임수의 대가” 등등의 비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터이니 그를 모차르트와 비교하는 게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 어떻든 바그너의 정치적 인종적 편견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고 들어도 나는 그의 음악이 갖고 있는 허장성세와 위압적인 분위기, 그 무거운 후덥지근함 같은 것들 때문에 들어낼 수가 없어서 시작하자마자 꺼 버리곤 했다.

앞에서 지상의 샘물 얘기를 했는데, 그것은 모차르트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스스로 ‘마술 피리’인 모차르트의 음악은 지상의 슬픔까지도 슬픔의 금강석으로 만드는 명랑성의 광휘,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인류 기쁨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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