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한 미국 보잉사 회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나는 만날 보잉사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데 전용기를 사자고 했더니 국회에서 (예산을) 깎아 버렸다”고 원망해 야당이 “국회와 국민을 모독한 발언”이라며 발끈하고 있다. 누리꾼들도 지면에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 냈다. 대통령이 ‘미국 군산(軍産)복합체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보잉사 회장 앞에서 나라 흉을 본 셈이니 경위가 어떻든 볼썽사납게 됐다.
▷우리에게도 대통령 전용기는 있다. 하지만 중간 급유 없이 지구 둘레의 3분의 1인 1만2600km를 날 수 있고, 미사일 요격 시스템 같은 첨단 무기가 장착돼 있는 ‘에어 포스 원’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1985년에 도입된 낡은 기종이고, 2010년이면 수명을 다한다. 항속 거리가 짧아 갈 수 있는 나라가 겨우 중국 일본 정도. 그래서 청와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전세기를 임차해 사용하고 있다. 임차 비용과 신형 항공기 구매가격을 따져 보면 새로 구입하는 편이 더 경제적이라고 청와대는 하소연한다.
▷노 대통령은 “내가 타려는 것도 아니고 다음 대통령을 위한 일인데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며 서운해한다. 지금 도입을 준비해도 2010년이나 돼야 탈 수 있다는 얘기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임기 말에 전용 헬기의 교체 예산을 내놨다가 퇴짜를 맞은 적이 있다. 그때도 청와대는 “우리가 타려는 게 아니다”라고 호소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차기 대통령을 위한다는 개헌에 반대하는 여론까지 떠올라 더 섭섭할지 모르겠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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