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박명을 의인화한 것이다. 뚜렷하게 밝거나 어두운 낮과 밤에 비해서 박명은 형태적 이미지로 나타낼 수 없는데도 그려 놓았으니 보기에 거북하고 또 키를 크게 하려고 장대 위에 세워 놓은 것도 부자연스럽지만, 어떻든 나무보다 높고 새보다도 높은 건 당연하다.
실은 요새 같은 때에 신문이라는 매체에서 박명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의인화된 박명이 순하게 생겨서 순한 사람 얘기를 해 볼까 하고 얘기를 시작했다.
우리 사는 세상이 싸움판이어서 그런지 요새 더욱 순한 사람이 그립다. 순하다는 것은, 서너 가지 얘기만 해 본다면, 순리대로 하는 것, 권력이든 돈이든 사리(私利) 때문에 공동체의 생명을 파괴하지 않는 것, 자기 자신에 대해서나 남에 대해서나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바른 판단을 가지고 대처하는 것, 살아있는 것들에 불가피한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는 파토스…힘을 숭배하는 우리의 본능에 따라 우리가 사악한 힘에 대해서도 그런 느낌을 갖고 있지 않은지도 자문해 볼 일이다.
보르헤스의 글을 보면 18세기 스웨덴의 신비가 스웨덴보리가 본 지옥에서 사악한 사자(死者)는 악마의 외모와 태도를 보고 그게 자기 취향에(그것도 취향이라면) 맞아 재빨리 그들과 합류하며, 권력 행사와 상호 증오가 그들의 행복인데, 그들은 정치에 생을 바친다. 정치활동이든 무슨 활동이든 그런 일이 벌어지는 곳이 지옥이라고 읽으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지옥에도 박명이 있을까.
정현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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