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속한 수녀, 종교의 본질을 만나다
여기, 아주 섬세하고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한 소녀가 있다. 그녀는 17세가 되는 1962년 9월, 수녀가 되기로 결심하고 로마 가톨릭 수녀회의 수련원에 들어간다. “사방에서 신을 만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날 것을 기대하면서.”
‘마음의 진보’ 저자인 영국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자신의 어린 날 결정이 얼마나 잘못된 판단 위에 선 것인지를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960년대의 수녀회는 강압적인 규율, 불합리한 의례, 냉담한 악습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수녀의 신분으로 옥스퍼드대 영문학과에 다니던 저자는 결국 7년 만에 수녀 서원을 철회해 달라는 청원을 넣는다. 수녀복을 벗고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 생활을 계속하지만 거식증, 불안 장애에 시달리며 자주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3년여에 걸쳐 정신과 의사의 상담치료를 받지만 자살 기도에까지 이르고 만다. 공교롭게도 박사 학위 과정을 통과하지 못해 교수가 되고자 하는 꿈도 좌절된다. 세상에 발을 붙이고 남들처럼 살고자 하는 삶은 시련의 연속이어서 나중에는 간질병 진단까지 받는다.
이 자서전은 저자가 예순 살을 넘긴 시점에서 썼다. 교수 직이 좌절된 뒤 그녀는 저술가로 살기 시작한다.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면서 바울로 마호메트 붓다 등 성인의 평전을 쓰고,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기원을 탐구하면서 세 종교를 비교 분석하는 저서를 쓴다.
그러면서 비로소 깨닫는다. 인간의 정신적 삶이란 나선형 계단 같은 것임을. 계단의 모서리마다에서 어둠과 좌절을 만나지만, 그 과정을 묵묵히 살아내다 보면 모르는 새에 조금씩 위로 올라가고 있음을. 그녀는 나선형의 계단을 인간 마음이 진보하는 상징의 형태로 설명한다. 그리하여 이 책을 쓰는 시점에서 이윽고 알아차린다. 그 고난스럽고 다단했던 생이 결국은 소녀 시절의 소망, “사방에서 신을 만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일에 다가가는 것이었음을.
암스트롱의 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인식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면서 의존성을 버리는 일이다. 그녀는 수녀원에 들어가는 시점부터 절대적 힘을 지닌 초월적 존재가 자신을 이끌어줄 것이라 기대하는 의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의존성 때문에 거듭 종교에 실망했을 것이다. 수녀 직을 버리고 종교를 버리면서 바로 그 지점에서 의존성도 벗는다. 또한 그 지점에서 자신이 특별하다는 나르시시즘을 이겨내면서 동시에 종교적 나르시시즘도 벗는다. ‘버림으로써 얻는다’는 명제처럼, 그제야 그녀는 범우주적인 종교의 본질과 만나게 된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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