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아서 슐레진저 2세

  • 입력 2007년 3월 3일 03시 00분


지난달 28일 89세로 타계한 아서 슐레진저 2세는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을 최초로 사용한 미국 역사학자다. 그는 신학자 라인홀트 니부어, 지난해 별세한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 언론인 제임스 웩슬러 등과 함께 2차대전 이후 미국의 대표적 진보주의자로 꼽힌다. 그는 1973년 저서 ‘제왕적 대통령직’에서 리처드 닉슨 행정부가 3권분립의 균형을 위협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점을 들어 대통령 독재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1946∼61년 모교인 하버드대 교수였던 그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특보로 발탁된 뒤 정치에 깊이 관여했다. 한때 하루 5000단어 분량의 글을 쓸 정도로 평생 왕성한 저술과 비평 활동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는 역사학자로서 역사와 감정을 분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케네디 시대를 다룬 저서 ‘1000일’은 케네디의 여성 편력을 무시해 보수파로부터 ‘정치소설’이란 공격을 받았다.

▷그는 공화당 대통령인 닉슨에 대한 탄핵은 적극 찬성했지만,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에는 앞장서서 반대해 진보적 사관을 가진 친(親)민주당 인사로도 평가된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을 비롯한 ‘예방 전쟁’ 정책에 대한 비판자였다. 그는 진보단체 ‘민주적 행동을 위한 미국인들’의 창립 멤버로 진보주의자의 대변인으로 불릴 정도였지만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실용적 진보를 주창했다.

▷15개월간 잡지 프리랜서 기자로 일한 적도 있는 그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03년 동아일보 신년호 대담에서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최상의 무기는 자유롭고 두려움 없는 언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은 방향타와 키, 그리고 정박하고자 하는 항구를 갖고 있어야 한다”면서 “효율적인 대통령은 가고자 하는 방향과 항구가 타당하고 합리적임을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노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 시대를 끝냈다고 하면서도 비판 언론에 대한 복수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노 대통령에 대한 고인의 평가가 궁금하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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