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국정 능력보다 도덕성 선호
비슷한 섹스 스캔들이라도 대처 방식에 따라 폭발성이 달라진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1992년 대선 가도에서 나이트클럽 가수 제니퍼 플라워스와의 섹스 스캔들이 터지자 오리발을 내밀었다. 아내 힐러리는 TV로 중계된 기자회견에 클린턴과 나란히 참석해 컨트리 송 가수 태미 위넷의 히트 송 제목 ‘Stand by Your Man’을 빌려 “나는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기 앉아 있다”고 말했다. 힐러리는 ‘Stand by Your Man’의 여주인공처럼 남편의 바람기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아내의 이미지로 선거전에서 남편의 추문을 덮었다.
모략이 판치는 대선에서 진실이 뭐냐는 덜 중요한 것 같다. 클린턴은 후일 폴라 존스 사건 때 법정 증언을 통해 제니퍼 플라워스와 성관계를 가진 사실을 인정했다.
서울대 박세일 교수는 저서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에서 ‘도덕과 정치는 기본을 달리하는 영역이다. 정치가에 대한 평가는 기본적으로 사적 평가가 아니라 국가 운영 능력과 그 성과에 대한 공적인 평가여야 한다’고 기술했다. 조상과 가족관계를 들추고 개인의 가정생활을 파고들거나 부모가 친일을 했는가, 빨치산이었는가, 자식이 군대를 안 갔는가, 재산이 많은가 등이 대통령 후보를 평가하는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도 ‘군주는 윤리적 공상과 엄연한 현실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권자의 표심은 수시로 변한다. 최근 미국 AP통신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가 도덕성이나 정직성 같은 인물의 성격을 중시했다. 국정참여 경험을 고려하는 유권자는 14%에 불과했다. 김헌태 한국여론사회연구소장은 “선진국 선거에서도 정책이나 국가 경영 능력이 도덕성 검증에 밀린다. 양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그 당 후보와 정책에 고정돼 있지만, 중간지대의 유권자들이 인물의 도덕성에 따라 움직이며 판세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1997년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이 체중 미달로 군대에 가지 않은 것은 중요한 패인 중의 하나였다. 2002년 선거에서 5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지키던 이 후보에게 결정타를 먹인 것은 자녀들과 아래위층에 살던 100평짜리 호화 빌라 세 채, 그리고 며느리의 원정출산이었다고 여론조사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결국엔 국정 능력이 민생에 더 중요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씨 사이에 검증 공방이 한창이다. 박 씨 캠프는 그가 청와대에서 퍼스트레이디 대역을 할 때부터 대통령 꿈을 꾸며 자기관리를 했기 때문에 건설회사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이 씨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경쟁자들은 ‘유신정권 말기 사실상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정치적 도덕성 문제에 확대경을 대려 할 수 있다.
아무튼 후보 검증을 경쟁 주자(走者)가 하거나 자당 혹은 반대당에서 하는 방식에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어느 나라에서나 검증은 기본적으로 언론 몫이다. 언론의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지만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미디어 전체로 보면 검증의 균형이 잡힌다고 봐야 한다.
끝없는 바람기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낮은 실업률과 사상 최장의 호황을 만들어 냈다. 결국 국민에게는 대통령의 개인사(史)보다는 국정 수행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클린턴도 도덕성 검증을 무사히 통과했기 때문에 후보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 황호택이 만난 인생리더 10인 ‘그들에게 길을 물으니’**
꿈을 팔아 기부금 모으는 총장(숙명여대 이경숙 총장) 물처럼 부드럽게 돌처럼 강하게(강신호 전경련 회장) 공민학교 소년이 법무부장관 되다(김성호 법무부장관) 늘 '처음처럼' 사는 은행원(신상훈 신한은행장)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영화배우 최은희) 변화하는 노동운동에 앞장선다(이용득 한국노총위원장) 야구도 인생도 숫자에 밝아야 성공한다(한화이글스 감독 김인식) 국제관계의 흐름 속에서 역사를 본다(최문형 한양대 명예교수) 경쟁력 있는 사학운영의 꿈(이돈희 민족사관고 교장) 경제를 끌고 가는 힘은 기업에서 나온다(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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