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 이야기는 어린 시절에 종종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를 TV에서 본 적이 있는데, 다른 대목들은 기억이 나지 않고 펌프 앞에서 어린 헬렌이 ‘물(w-a-t-e-r)’이라는 말을 아주 힘들게 하던 장면만 떠오른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헬렌의 자서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다시 읽었다.
헬렌의 이야기가 어떤 보편적인 감동을 담고 있다면, 그의 이야기가 결코 그의 것만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정도의 문제일 뿐 누구나 태어나면서 일정한 조건들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다. 그 조건들이 늘 호의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어려운 조건들을 가지고서 삶을 시작하기 마련이다. 인생이란 그런 조건들을 하나하나 극복하면서 이루어진다.
삶이 가져다주는 힘겨움은 원한을 낳기도 하고 창조를 낳기도 한다. 힘겨움이 닥쳤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 힘겨움에 대해 원한을 품는다. 그리고 ‘세상’이라는 것을 저주하게 된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그 힘겨움을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고 삶에서 어떤 새로운 경지를 여는 계기로 삼는다. 역사적으로 악한 일을 한 사람들도, 또 뛰어난 일을 한 사람들도 대개 남들보다 더 큰 힘겨움을 겪은 사람들이다. 다만 그 힘겨움을 원한으로 가져가는가 창조로 가져가는가가 그 모든 차이를 가져온다.
헬렌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것은 그의 삶에 남들보다 모진 조건들이 주어졌고, 그가 그 조건들과 싸우면서 그 방벽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려 가는 과정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사랑이다. 누구도 혼자의 힘으로 삶의 방벽들을 넘어갈 수는 없다. 그때 자신의 손을 잡아 주고, 걸음을 이끌어 주고, 미래를 보여 줄 사람,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헬렌의 이야기는 또한 설리번 선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이 책 앞의 사진들 중 왜 설리번의 사진이 없는지 궁금하다) 헬렌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한 사람, 그의 삶의 동반자가 되어 준 사람은 설리번이고, 여기에서 우리는 사랑의 위대함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헬라스(그리스)의 델포이 신전에는 여러 격언들이 씌어 있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주어진 것을 선용(善用)하라”이다. 누구나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시작하고 어떠한 주어진 조건 속에서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선용할 것인가. 어떻게 원한이 아닌 창조의 삶으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헬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바로 이 점을 보여 주고 있다.
이정우 철학자·소운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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