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100번째 영화 ‘천년학’ 개봉 앞둔 임권택 감독

  • 입력 2007년 3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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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편이나 찍었으니 더 잘해야 하는데….” 아직도 영화 만들기가 힘들다는 임권택 감독. 전영한  기자
“100편이나 찍었으니 더 잘해야 하는데….” 아직도 영화 만들기가 힘들다는 임권택 감독. 전영한 기자
‘너무 일찍 왔다’ 생각하며 약속시간보다 50분 먼저 도착했는데 임권택 감독은 벌써 와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집이 경기 용인시라 딱 맞춰 출발하면 늦을까봐 아예 일찍 나오지요. 약속시간에 늦고 그러면 되나요.”

거장일수록 겸손하다더니, 어눌한 듯 구수한 말투의 임 감독은 내내 그랬다.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개봉(4월 12일)을 앞둔 임 감독을 15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영화제작사 ‘키노2’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청준의 단편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남남이면서 소리꾼인 양아버지 밑에서 남매로 자란 동호(조재현)와 송화(오정해)의 사랑 이야기. 평생 그리워하면서도 엇갈리기만 하는 사랑이다. 동호와 송화는 ‘서편제’에 나왔던 바로 그들. 영화는 ‘서편제’의 속편 격이다.

―100번째 영화를 개봉하는 소감이 어떠세요.

“초기 10여 년 동안 50여 편을 찍어서 이렇게 많은 숫자가 돼버렸어요. 100편이나 찍은 감독인 것이 영화에 보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잘해야 하는데. 늘 힘들어요.”

―감독님의 약력을 정리하다가 너무 많아서 뭘 넣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요약이 불가능하지요. 허허, 하도 오래 해먹었으니까….”

―감독님 같은 거장도 혹시 부끄러운 때가 있었나요.

“초기 작품 중 ‘아이고, 저런 영화 내가 만들었다는 걸 누가 알까 무섭다’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에요. 한번은 TV를 켜니까 1960년대 액션물이 나오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하더라고. 다 보니까 내가 찍은 영화였는데 그게 제목이 뭔지 누구랑 했는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저런 영화는 좀 방송에 안 나왔으면’ 했지. 허허.”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요.

“그건 칸 영화제 감독상(‘취화선’·2002년) 탔을 때인데.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는데 신세만 지고 ‘만날 아무것도 못하고 왔다갔다 한다’고 할까봐 걱정이 됐어요. 칸에서 상을 타니까 그 은혜에 보답한 것 같고 짐을 벗은 것 같더라고요.”

―판소리를 소재로 한 사랑 이야기가 요즘 세대한테도 다가갈까요.

“‘서편제’ 찍을 때도 젊은 관객에 대한 기대를 안 했거든.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잖아요. 지금 젊은이들은 또 다르긴 하지만….”

―왜 그동안 사랑 이야기를 안 찍으셨나요.

“초기에는 찍기도 했는데, 옆에서 ‘연애도 한 번 못해 본 사람’이라며 말리잖아요. 영화를 보니 좀 어설펐나봐.”

―왜 연애를 안 하셨는데요.

“도무지 여자들이 접근해 오지를 않았죠. 내가 접근하기엔 용기가 없었고. 나도 차기도 하고 차여 보고도 싶었는데. (웃으며) 사실은 날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닌데 내가 너무 쌀쌀맞았다네.”(그는 마흔이 훌쩍 넘은 1979년에 배우 출신의 채혜숙 씨와 결혼했다. ‘사모님이 미인이시다’ 하니 ‘이젠 나이 먹어서…’ 하면서도 흐뭇해했다)

―‘천년학’을 ‘서편제’의 속편으로 봐도 되나요.

“가족 관계가 ‘서편제’와 같긴 하지만 ‘서편제’의 아류는 아니에요. 어차피 ‘서편제’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고 노력했고 결과적으로는 그런 것 같아요.”

―초기에 제작이 취소될 뻔한 우여곡절도 있었잖아요.

“그런 일을 처음 당해서 충격이 컸어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아요. 우리 영화에 딱 맞는 연기자들이 출연하게 됐으니. 그러나 투자자들이 스타 캐스팅이 안 됐다고 투자를 주저하는 사태가 생긴 것은 좀….”

―이번 영화에서 가장 신경 쓰신 부분은 뭔가요.

“영화 속 판소리가 주는 감흥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 속으로 꽉 맞물려 들어가서 극 자체의 감흥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쉬운 일은 아닌데, 꽤 된 것 같아요. 다 묶어서 보면 이 영화 한 편이 커다란 한국화 같은 느낌이죠.”

―한국적인 것에 매진하시는 이유는요.

“처음엔 할리우드 영화처럼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 내가 살아남을 방법은 차별화해서 한국인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임을 알았어요.”

―한국에는 왜 감독님처럼 나이 들어서도 활동하는 감독이 없을까요.

“제작자들이 젊어지면서 아마 우리를 구세대로 보는 것 같아요. 중견 감독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어진 거지. 일본만 해도 예전에 쟁쟁했던 감독들이 아직도 다들 활동하는데….”

―100편이나 만드셨는데 돈은 많이 버셨나요.

“돈은 별로 번 게 없어요. 어느 정도 받아도, 하나 하는 데 2년씩 걸리니까. 흥행이 잘됐으면 ‘나도 좀 주시오’ 할 텐데 그동안 흥행이 됐어야지, 허허.”

:임권택 감독:

△1936년 전남 장성 출생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 △1987년 ‘씨받이’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감독상, 작품상 수상 △1990년 ‘장군의 아들’로 한국영화 최고흥행기록 수립(서울 67만 명) △1993년 ‘서편제’로 한국영화 최초 100만 관객 돌파, 상하이 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 △2000년 ‘춘향뎐’으로 하와이 국제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2002년 ‘취화선’으로 칸 국제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수상, 금관문화훈장, 가톨릭대 명예문학박사, 일민 예술상 △2005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명예금곰상 수상

▶ 임권택 감독 100번째 영화 ‘천년학’, 판소리에 실린 엇갈린 사랑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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