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소통하는 건축을 위하여
술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처음 만난 이의 살아온 인생 편력을 듣다 보면 어느새 그가 내 오랜 지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렇듯 자서전은 개인의 독백이기 이전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독자인 내가 그의 삶 속에 들어가고 그가 다시 나에게로 다가오는 소통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자서전으로 만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20세기 초반 마천루라는 미국 대도시의 기계문명에 대한 거친 저항과 광활한 남서부 대자연에의 순응을 애증에 찬 목소리로 들려준다. 아무리 위대한 건축가라 할지라도 그가 설계한 건축물보다 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진 못한다. 사람들은 위대한 건축물은 알지만 그 위대함을 창조해 낸 건축가는 기억하지 못한다.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아마도 이것이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아이콘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라이트의 대부분의 삶은 시카고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시카고는 근대건축의 상징인 마천루의 도시이다.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 라이트의 작품은 마천루도 아니거니와 마천루처럼 도심을 가득 채우고 있지도 않다. 지금은 시카고의 관광상품이기도 한 라이트의 작품들을 순례해 보면 그의 발자취는 시카고 근교의 자연과 하나가 된 다양한 주택에서 만날 수 있다.
“나는 이제 알았다. 집은 언덕 위에 혹은 그 어떤 것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집은 언덕 속으로 스며들어 가야 하는 것이었다. 언덕과 집이 함께 살면서 더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의 고백처럼 라이트의 주택은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유기적 건축을 갈망하였다. 그래서 완성된 것이 광활한 초원지대를 배경으로 한 ‘프레리(prairie) 스타일’ 건축이다.
자연에 순응한 라이트의 정신은 탈리에신에 응축되어 있다. 탈리에신은 그의 고향인 웨일스의 음유시인 이름이다. ‘빛나는 이마’라는 뜻의 탈리에신은 라이트의 삶과 일, 가족의 기쁨과 슬픔을 담고 있는 자신의 집 이름이기도하다. 이곳은 라이트가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가족과 함께 생활한 공동체 공간이다. 그래서 이 자서전의 상당 부분은 탈리에신 I, II, III을 통해서 그가 겪었던 인생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한다. 또한 탈리에신에서 함께했던 제자들과의 삶은 오늘날 건축 교육의 원형으로 탐독할 만하다.
이 책은 라이트가 건축가로서의 삶의 중간쯤에 서서 쓴 책이라 완전한 자서전은 아니다. 그래서 그의 불꽃같은 열정에 더해진 완숙미가 활짝 피어난, ‘낙수장’이란 별칭으로 더 유명한 카우프먼 저택과 구겐하임 미술관에 대한 독백이 없다. 라이트는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열어 놓은 길을 독자들과 함께 가길 바라고 그 발길의 마지막에 낙수장과 구겐하임 미술관에 이르는 상상의 세계를 열어 놓은 듯하다. 그래서 이 자서전의 끝은 독자의 상상력으로 이어지게 된다. 근대를 풍미했던 거장 건축가가 걸어간 마지막 길을 찾아 나서는 여행은 이제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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