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교육 포퓰리즘’ 득 보는 국민 없다

  • 입력 2007년 3월 26일 19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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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 좋은 대학 보내 출세시키기.’ 이 땅의 모든 부모가 가슴에 품은 교육관의 알파요 오메가일지도 모르겠다. 한(恨)을 폭발시키는 듯한 부모의 교육열 덕분에 신분상승, 계층상승에 성공한 아들딸도 적지 않을 것이다.

국민 개개인의 ‘교육 이기심’은 ‘빈국(貧國)의 숙명’을 끊어 낸 위대한 에너지이기도 했다. 방방곡곡 집집마다 ‘내 새끼 잘 가르쳐 보겠다’며 온갖 희생 마다하지 않고 교육에 투자 또는 투기(投機)한 덕에 우리나라는 불과 수십 년 사이에 국제 경쟁에서 제법 통하는 지식과 기술을 쌓고 활용할 수 있었다. 천연자원 없는 나라가 사람마저 미개(未開) 후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개방경제의 성공도, 국내총생산(GDP) 세계 10위권 도약도 불가능했음이 틀림없다.

이렇던 한국이 지금 경제의 기적과 함께 교육의 기적도 더는 바라기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세계는 인적 자원의 질(質)과 양(量)이 국가 간 서열, 기업 간 서열, 개인 간 서열을 좌우하다시피 하는 지식기반사회로 깊숙이 진입했다. 북한처럼 되고 싶지 않는 한, 이런 대세를 거스를 수 있는 나라나 국민은 없다. 그런데도 세계의 1등 인재를 양성할 교육은커녕 국내의 우물 안에서조차 1, 2, 3등급을 변별하기 어려운 교육과 입시가 강요되고 있다. 선진국 추세를 골라 가며 역류하는 포퓰리즘적 ‘평등코드’ 교육이 개인과 나라 전체의 인적 자본(휴먼캐피털)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모두가 경쟁원리 붕괴의 피해자

평준화정책은 구태여 국익 차원에서 볼 것도 없이 다수 학부모와 학생들의 이기심도 채워 주지 못하고 있다. 평준화가 사교육비를 줄여 줄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정부가 대입 전형에 아무리 깊숙이 개입해도, 학생들 간의 입시 경쟁과 대학들 간의 선발 경쟁이 존재하는 한 사교육 수요는 계속 창출될 것이다. 사교육에 대한 공교육의 경쟁력이 바닥인 상태라서 더더욱 그렇다.

평준화는 또 지역 간, 학교 간 학력(學力) 격차를 도리어 고착시키거나 확대시킨다. 가난한 지역일수록 교육 혜택이 절실하다. ‘교육이 최고의 복지정책’이라는 말이 딱 맞다. 그러나 평준화체제 아래에서 저소득층 지역의 학교는 더 소외되고 있다. 교육환경이 열악할 뿐 아니라, 수준이 비슷한 학생들이 모였을 때 나타나는 학습의 또래효과(총체적 성취도 향상)를 기대하기가 더 어렵다. 가난한 인재들은 평준화제도가 없다면 얻을 수도 있었을 더 나은 학교 선택의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 평준화 30년의 최대 피해 계층은 저소득층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대입 3불(不)정책 가운데 고교등급제 금지는 엄연히 존재하는 학력 격차를 막무가내로 부정하는 ‘불투명 정책’의 극치다. 경쟁원리를 짓밟고 역차별을 통해 입시의 공정성을 무너뜨린다. 고교별 학력 수준을 덮어 둔 채 내신 위주의 대입 전형을 억지로 유도하니,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많은 학생은 자구(自救)의 길을 찾게 된다. 그것은 국내 사교육비 또는 해외유학의 증가로 나타난다.

투명한 경쟁을 방해하는 정부에 환멸을 느낀 유학생들은 학업을 마친 뒤에도 귀국을 꺼린다. 그 덕에 경쟁자가 적어져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크게 보아 자해적(自害的) 발상이다. 인재를 모으지 못하는 나라가 과학기술과 경제산업의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국력이 약화되고 국민이 나눠 가질 파이가 줄어든다.

기여입학제는 기회의 불평등이라는 측면이 있다. ‘부모 잘 만나 좋은 대학 가는’ 모습에 배 아플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를 잘만 활용하면 가난한 우수 학생들을 도울 수 있고, 교육 활성화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

‘내 자식 출세’와 ‘인재입국’ 조화를

교육 문제는 궁극적으로 국가가 글로벌 경쟁에서 이겨야 더 많은 국민이 더 잘살 수 있다는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내 자식’뿐 아니라 될수록 많은 ‘국가적 인재들’이 세계 속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제도를 국민이 선호해야 한다.

나라의 인적 자본이 위축돼 세계적 경쟁에서 밀리면 사회 전체의 성장잠재력이 구조적으로 약화된다. 그 최대의 피해 계층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다수 국민이 ‘내 자식의 출세’와 ‘인재 입국(立國)’을 동시에 생각하는 균형감각과 ‘큰 이기심’을 보인다면 교육 재생(再生)의 가능성도 생겨나지 않겠는가.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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