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독재보다 더 교묘한 수법
광고는 독립 언론을 지탱하는 젖줄이다. 광고가 부실해 재정이 탄탄하지 못한 신문은 고(高)품질의 기사를 제공하기가 쉽지 않고, 결국에는 논조의 독립성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비판언론을 눈엣가시로 여기던 유신정권이 신문경영의 급소를 제대로 짚었던 셈이다.
노무현 정권은 독재정권 시절에 자행된 기본권 유린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부정적 유산을 청산하겠다고 자임했다. 그래 놓고 87년 역사의 동아일보 등에 광고를 이용한 탄압을 가하고 있다. 일부 정부 부처와 공기업이 신문광고를 하면서 동아일보, 조선일보, 문화일보를 배제하고 있다. 세 신문에 대한 광고 배제는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관광공사가 테이프를 끊었고, 다른 공기업으로 번져 가고 있다. 국정홍보처는 ‘e-PR 시스템’을 개발해 공기업의 광고 집행 현황을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유신독재정권한테서 전수받은 수법이 더 교묘해졌다.
공기업이나 정부 광고는 권력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정권에 비판적인 논조를 가진 신문이라고 해서 광고를 주지 않는 것은 부당한 차별이고, 불법적인 권력 남용이며, 이 신문의 독자인 국민의 알 권리 침해다. 낙하산 경영자들이 공기업을 자기 기업처럼 생각한다면 광고효과가 떨어지는 마이너신문에는 광고를 내면서 발행부수가 많은 신문을 뺄 수 있겠는가.
이 정부의 언론 탄압은 유치하고 졸렬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 규모가 국내 상장기업 전체 매출액의 0.2%에 불과한 신문을 이만저만 괴롭히는 게 아니다. 지하철역마다 무가지(無價紙)가 무더기로 쌓여 있는데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판촉지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과징금을 물린다. 그중에는 아파트 경비원에게 주는 신문도 있다. 수십 명의 공정위 직원들이 허구한 날 신문사 지국을 뒤지는 데 행정력을 소모한다.
공정위는 신문의 경품과 무가지 배포 단속에 포상금 1000만 원을 내걸었다. 어린이 유괴범이나 살인 강도범에게 걸린 현상금 수준이다. 포털은 언론사에서 뉴스를 공급받아 사실상의 편집을 통해 언론 활동을 한다. 포털은 회원을 늘리기 위해 무료 e메일에 쇼핑몰 할인쿠폰을 제공하고 게임 엔터테인먼트 같은 서비스를 연중무휴로 제공하지만 아무 탈이 없다.
현 정부 초기에 대통령홍보비서관을 지낸 사람이 “무가지와 포털로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를 고사(枯死)시키는 로드맵을 짰다”고 고백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중간에 전략을 바꿨는지, ‘고사 대상’에서 중앙일보는 빠지고 문화일보가 추가로 포함됐다.
비판신문 枯死로드맵 만든 정권
언론자유는 최고 권력자와 다른 의견을 밝힐 수 있는 자유, 바꾸어 말하면 비판의 자유가 핵심이다. 언론의 사명은 기본적으로 감시견(監視犬)이다. 대통령 곁에서 꼬리를 흔드는 애완견도 아니고, 대통령의 반대자들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호위견도 아니다.
박남춘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을 비롯한 청와대 비서들은 툭하면 대통령 말을 흉내 내 ‘불량 상품’ 운운하며 신문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차기 정부에서는 ‘노무현 정권 언론탄압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불량 권력’의 하수인들이 헌법에 보장된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어떻게 유린했는지 밝혀내야 한다. 비판언론 말살작전에 참여한 이들의 권력 남용을 추궁해 후세의 경계로 삼을 일이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 황호택이 만난 인생리더 10인 ‘그들에게 길을 물으니’**
꿈을 팔아 기부금 모으는 총장(숙명여대 이경숙 총장) 물처럼 부드럽게 돌처럼 강하게(강신호 전경련 회장) 공민학교 소년이 법무부장관 되다(김성호 법무부장관) 늘 '처음처럼' 사는 은행원(신상훈 신한은행장)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영화배우 최은희) 변화하는 노동운동에 앞장선다(이용득 한국노총위원장) 야구도 인생도 숫자에 밝아야 성공한다(한화이글스 감독 김인식) 국제관계의 흐름 속에서 역사를 본다(최문형 한양대 명예교수) 경쟁력 있는 사학운영의 꿈(이돈희 민족사관고 교장) 경제를 끌고 가는 힘은 기업에서 나온다(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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