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이 그 나라 사람값인데
3불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이 당장 폐지된대도 즉각 시행할 대학은 손꼽을 정도라고 본다. 그 대학들이 더 우수한 학생을 변별력 있게 뽑아야 경쟁력이 커진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야만 세계적 대학이 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공급자인 학교가 죽을힘을 다해 경쟁해야지 수요자인 학생만 힘들어지는 것도 억울하다.
진짜 교육경쟁력을 높여 개인과 나라를 이롭게 할 방법은 따로 있다. 3불정책 폐지가 아닌 교육시장 개방이다. 미국의 매사추세츠공대(MIT), 와튼스쿨 등을 들여간 싱가포르처럼 외국의 명문대가 우리나라로 온다고 발표되면 그날부터 국내 대학들은 확 달라질 게 분명하다.
이런 게 혁신이다. 사람이든, 교육이든, 기업이든, 경쟁 환경이 치열해지면 어떻게든 살기 위해 혁신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그런 환경을 만들면 혁신을 외치지 않아도 혁신이 나온다.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성장으로 가기(Going for Growth)’의 핵심 전략도 진입과 퇴출 장벽 폐지, 외국인 투자 개방 등 경쟁의 극대화였다. 지난해 말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한국이 지식기반 경제로 나아가려면 금융, 서비스, 노동시장 개방으로 경쟁과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경쟁 대신 연대(連帶)와 합의를 중시하는 유럽을 모델 삼는 이들이 좌파 쪽에 적지 않다. 하지만 정부가 주도하는 조정된 자본주의(coordinated capitalism)로 성장과 복지를 이룬 태평성대는 1973년에 끝났다고 정치경제학자인 배리 에이첸그린은 ‘1945년 이후의 유럽경제’에서 지적했다. 앞선 미국을 따라가는 데는 그 전법이 통했지만 첨단기술과 혁신이 절실한 시대에 옛날 전법은 ‘성공의 덫’일 뿐이다. 지금 독일 경제가 살아나고 북유럽 국가는 앞서가는 비결도 경쟁을 통해 혁신에 성공한 데 있다.
물론 모두가 경쟁을 즐기는 건 아니다. 승부 기질과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면 꼭 전쟁하듯 살아야 하는지 회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화 정보화가 심화될수록 세상의 경쟁은 더 극심해지는 게 현실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대접받는 대통령이야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된들 뭐하냐” 싶겠지만 국민소득대로 그 나라 사람값이 매겨지는 법이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암만 행복해도 그 나라 대학 졸업자가 남의 나라 가서 막일을 해야 먹고살 판이면, 난 그런 행복 원하지 않는다.
21세기의 현실을 피할 수 없다면 경쟁에 적응해 살아남는 수밖에 없다. OECD는 “규제 개혁의 목표란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 경제를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경쟁을 키우기는커녕 이를 막고 왜곡하는 규제는 정부 실패를 넘어선 죄악이다.
경쟁 막아 경쟁력 죽일 텐가
대통령은 “경쟁 환경에서 더 유리한 사람들이 본고사 내놓으라는 것”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정의를 위해 3불정책에 손댈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천만의 말씀이다. 3불정책에 반대하는 쪽은 경쟁이 피곤하고 두려운 일부 교사와 좌파, 통제권을 꽉 쥔 정권 등 기득권임을 우리는 안다. 진짜 약자에겐 운(運)이나 돈, '빽' 말고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경쟁사회가 훨씬 정의롭다. 약자인 척, 약자를 돕는 척하는 권력층의 경쟁 반대에 더 속을 순 없다.
대통령은 경쟁을 안 하고 선진국으로 갈 방법은 없다고 했다. 진심이라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경쟁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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