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핫라인

  • 입력 2007년 4월 11일 19시 49분


옛 소련은 1962년 미국의 코밑에 있는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이었다.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혁명 정부가 들어선 직후다. 공중촬영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한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은 즉각 TV연설을 통해 이를 국민에게 알리고 쿠바에 대한 해상봉쇄를 명령했다. 소련과의 핵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전 세계가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는 가운데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마침내 굴복한다. 쿠바로 향하던 소련 선단(船團) 16척은 방향을 되돌리고 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듬해 워싱턴과 모스크바 사이에 긴급연락망인 핫라인(hot line)이 설치됐다. 연락 두절로 인한 핵전쟁만은 막아야겠다는 데 양국이 뜻을 같이한 결과였다. 통신방법은 유선과 무선의 2개 전신회로에 의한 텔레타이프 방식이었다. 1967년 제 3차 중동전쟁 때 소련은 이 핫라인을 이용해 미국에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소련은 1966년에는 프랑스, 이듬해에는 영국과도 핫라인을 설치했다.

▷남북한 해군 사이에도 2004년 핫라인이 설치됐다. 서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이 더 큰 군사 사태로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양측 간에는 아직 핫라인을 운영할 만한 충분한 신뢰가 쌓이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북한의 해군 함정이나 어선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면 우리 해군은 즉각 교신을 시도하지만 북은 응답을 안 하거나 늦게 응답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의 통신체계가 노후한 이유도 있겠지만 NLL 무력화를 위한 의도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그제 정상회담에서 양국 해군 및 공군 간에 핫라인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서해는 양국 해·공군의 군사 활동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을 포함한 3국 어선의 어로 활동도 많은 곳이다. 핫라인 설치는 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 유지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핫라인은 상호 신뢰가 생명이다. 행여 상대방을 교란하는 무기로 악용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육 정 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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