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답사기 30선]<7>유럽 카페 산책

  • 입력 2007년 4월 1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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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있으면 카페로 가자…바르고 얌전하게 살고 있는 자신이 용서되지 않으면 카페로 가자. 좋은 사람을 찾지 못하면 카페로 가자. 언제나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카페로 가자. 사람을 경멸하지만 사람이 없어 견디지 못하면 카페로 가자.》

미지의 카페 여행에 초대합니다

흘러가는 구름을 사랑했던 19세기의 이방인 보들레르의 후예로, 시속 300km로 달리는 초고속 열차를 애호하는 21세기 유목주의자에게 “왜 사는가”라는 물음은 곧 “왜 떠나는가”로 대체된다. 그가 향하는 목적지가 유럽이라면, 그곳이 파리든 로마든 베를린이든 프라하든 광장으로부터, 거리로부터, 그 거리의 카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유럽의 예술사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 왔던 서양사학자 이광주의 ‘유럽 카페 산책’은 여행이라는 매혹적인 삶의 여정에서 캐낸 보석 같은 카페 순례기이다.

그의 발걸음은 16세기 오스만튀르크의 수도 이스탄불을 시발지로 해서 파리 베네치아 로마 런던 베를린 빈 프라하를 거쳐 21세기 새로운 부활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도나우 강변의 도시 부다페스트의 ‘카페 뉴욕’에서 끝난다. 그가 산책길에 만나는 사람들은 사랑과 혁명, 문학과 예술의 이름으로 카페를 신봉하던 카페맨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나폴레옹과 레닌, 랭보와 베를렌, 고흐와 피카소, 카프카와 루카치 등 18세기부터 20세기 지성사에 휘황하게 존재를 드러냈던 정치가, 철학자, 예술가들이다.

이 책은 역사를 기술하는 몇 가지 방식 중 카페를 통한 사생활의 역사, 곧 미시사의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제목에 ‘산책’이라고 썼거니와, 단순히 카페의 변천사를 통한 유럽의 역사와 문화 읽기에 그치지 않고, 산책을 통한 저자와 독자 간의 상호 발견, 나아가 동반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파리 최초의 카페인 프로코프(1686년)에 들어가 보고, 이어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의 교조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공공 집필실이자 회합의 장소였던 카페 되 마고(1885년)와 카페 드 플로르(1886년)의 노천 의자에 앉아 보고, 또 보는 순간 에로스의 치명적인 열기에 휩싸이고 마는 매혹적인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1720년)에서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깨닫게 되는 것은 저자의 카페 순례를 통한 나의 카페,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의 재발견이다.

저마다의 인생이 있듯이 저마다 카페에 대한 추억이 있다. 영원한 파리의 산책객 보들레르처럼 “1000년을 산 것보다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외칠 정도는 아니지만, 나 또한 15년 넘게 유럽을 오가며 키워온 소중한 카페의 목록을 간직하고 있다. 추억은 인생을 두 번 살게 한다.

이 책의 미덕은 단지 저자의 안내를 눈으로만 좇는 시선의 카페 산책이 아닌 저마다의 추억 속으로, 나아가 미지의 카페 여행으로 독자를 이끌고 새로운 여행을 도모하게 하는 점이다. 저자의 고백처럼, 이전의 여행이 미술관이나 성당이나 묘지의 조각과 그림을 찾아서였다면, 이제는 미술관 옆 카페, 또 묘지 건너편의 카페를 찾아 떠나는 것, 올여름 나는 어떤 카페와 마주칠까, 생각만으로도 황홀하다.

함정임 소설가·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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