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전문가의 합의의 소산은 아니지만 빗나간 역사적 전망이나 예측의 사례는 허다하다. 1950년대에 한국에 들른 미국 산림전문가는 당시 추세라면 30년 안에 한국의 전 국토가 사막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이런 예측의 현실성은 당대를 살아 보지 않은 사람에겐 상상하기 힘들다. 1955년 한 해에만 산림의 17%가 땔감으로 사라졌다.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은 불길한 예측을 완전히 무효화하고 세계적 성공작이라는 산림녹화를 이뤄 냈다.
빗나간 미래의 전망들
한동안 도미노 이론이 널리 퍼졌다. 한 나라가 공산화되면 인접 국가도 공산화된다는 내용으로 1950년대 냉전 시기에 공산권 봉쇄정책을 위해 미국에서 고안된 외교이론이다. 한국의 경우 베트남전쟁이라는 맥락 속에서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동남아시아 전역이 적화된다는 투로 거론됐다.
1975년 베트남의 무력 통일이 실현됐다. 사회주의 역사상 최고 순간이었다. 그러나 오르막의 정상은 곧 내리막의 기점이 됐다. 중국의 베트남 침공을 비롯해서 그 후의 역사 전개는 세인의 허를 찔렀다. 오늘날 베트남에서 청바지 차림으로 열창하는 현지 인기 가수의 팝송을 듣고 있으면 서울이나 도쿄에 있는 듯한 착각이 인다. 역설적이게도 도미노 이론은 1980년대 말 동유럽에서 역(逆)도미노 현상으로 실현됐다.
한국 자본주의의 붕괴를 예측하는 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취약한 경제 구조가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 수치의 외채 때문에 붕괴는 시간문제라는 논리였다. 이런 예측성 논평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일본의 이른바 진보 성향 매체에 줄곧 보도됐다.
1980년대 말에 만나 본 우리 쪽 ‘민족경제’ 이론가도 경제 붕괴를 장담했다. 어제오늘 시작된 얘기가 아닌데 아직 한국 경제가 유지되고 있지 않느냐는 반문에 그때그때의 우연이 구원투수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마르크스가 많은 것을 배웠다며 작가론을 쓰고 싶어 했던 발자크는 ‘우연도 강자의 편을 든다’고 말했다. ‘우연’이 도와줬다면 한국 경제가 그래도 강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물음에 경제 문제를 문학적 수사와 연계하고 싶지 않다며 이론가는 핵심을 회피했다.
미래 예측은 어렵고 미래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맹목적이다. 역사가 에릭 홉스봄도 사회주의의 붕괴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토로했다. 과학적 전망은 별개이지만 곧잘 미래 예측 담론이 나오는 이유는 인간이 ‘꿈꾸는 동물’이며 희망적 관측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비관적 예측을 재촉하기도 한다. 또 미래 전망은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건국을 전후해서 북으로 간 사람 중에는 미래, 곧 사회주의라는 단선적 미래 전망에 끌린 경우가 많다. 19세기의 알렉산드르 게르첸이 불신한 ‘역사의 오페라 대사’의 하나를 성급하게 수용했던 것이다.
적정한 비관은 사회건강에 유익
우리 사이에서도 명시적, 암묵적 미래 예측 담론이 구두로 또 문자로 수다하게 전개되고 있다. 거짓 예언의 혐의가 짙은 정치적 언설을 빼더라도 비관적 전망이 심심찮게 나오고는 한다.
과도한 비관론은 파괴적이다. 적정량의 비관론은 최악의 상태를 예상하고 대처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회의 건강을 위해 좋다. 전 국토의 사막화나 인구 폭발 같은 비관적 전망이 사실은 최악의 사태를 예방했다는 국면을 간과할 수 없다. 자신만만한 수험생보다 다소 불안해하는 수험생의 성공률이 높다는 게 나의 관찰이다.
유종호 문학평론가·전 연세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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