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답사기 30선]<8>일본인의 영남대로 답사기

  • 입력 2007년 4월 1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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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석탑, 절, 무덤처럼 특정한 한 장소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 공간 전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길이란 한국인이 만들어낸 역사이자 전통이자 지혜인데도 사람들은 길에 너무나 무관심하고 소홀하다.》

사라져 가는 옛길… 그 위를 걷는 안타까움

조선 후기까지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고속도로나 다름없었던 길은 연행(燕行)길이었던 의주로, 영남대로(嶺南大路), 삼남대로 등 9대로였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선 대체로 열나흘 길인 영남대로를 이용했다.

교통이 발달하면서 우리나라에 그런 옛길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대부분이 잘 모르는 시대에 우리 선조들이 걸었던 역사 속의 길이며, 조선통신사가 오고 갔던 영남대로를 ‘끊어 타기’로 걸어서 고스란히 되살려낸 지리학자가 있다. 도도로키 히로시. 그가 낸 책이 ‘일본인의 영남대로 답사기’이다.

지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 온 그가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것이 있다. ‘문화유산’에 대해 관심이 많고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은 많은데 어째서 ‘세계문화유산이 될 만한 유형무형의 가치가 있는 길인 조선시대의 ‘과거길’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가였다.

‘신작로가 생기면서 옛길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놀랍게도 21세기를 맞이하려는 지금에 그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9대로 가운데 문경새재 때문에 가장 알려진 영남대로를 소개하려 한다’고 책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자동차와 기차가 생기면서 아무도 걷지 않은 잊혀진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영남대로나 삼남대로에 대해 여러 형태의 논문과 단행본이 나왔지만 그 역사의 길을 한발 한발 걸어서 갔던 사람은 근래 들어 그가 처음이었다.

우리나라의 옛 지도를 참조하면서 길에 나선 그가 만난 것은 단지 옛길만이 아니었다. “길이 있으니까 가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가니까 길이 열리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할아버지를 비롯해 “어서 타” 하고 차를 세우는 운전자 등 아직도 남아 있는 이 나라의 인심과 문화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깨달았다.

그는 우리나라 옛길을 걷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다”는 니체의 말처럼 평생을 같이 걸어갈 도반(道伴)인 반려자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사라진 옛길을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년 전에 필자는 영남대로를 14일에 걸쳐 걸은 적이 있다. 낯설고 말도 선 땅에서, 닷새가 지나자 자면서도 길을 묻고, 걸어가는 꿈을 꾸는 그 힘든 여정에서, 일본인 도도로키는 얼마나 힘겹게 걸어갔을까 생각했다.

“개발이란 이름 아래 너무도 무방비하며 그래서 닥치는 대로 훼손되어 가는 불쌍한 옛길이 너무 딱하지 않은가”라고 애석해하는 저자의 말이 아니라도 지금 우리가 그 옛길을 복원하고 관리하지 않는다면 금명간 그 자취마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걷기 붐이 일어나 땅 끝에서 휴전선까지 또는 국도 1호선을 따라 걷는 사람도 많고, 산티아고나 실크로드 구간, 또는 ‘세계는 넓다’고 세계 구석구석을 걷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옛길이나 강 길을 걷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 역사의 길을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도록 사람을 위한 길을 만들고, 길을 걸은 사람들에게 인증서를 주는 운동이 있었으면 한다. 또 그 길이 문화재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를 바라며 저자에게 격려를 보낸다.

신정일 우리땅걷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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