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여 년 전의 해금정책으로 변방으로 전락해 버린 바다. 그래서 역사는 있되, 기록은 없었던 바다를 ‘관해기’는 생활의 공간, 역사의 공간, 민중의 공간으로 되돌린다. 바다의 생태·신화뿐 아니라, 바닷가 사람들의 역사, 민속, 생활을 종합적으로 탐사한 해양생활문화의 보고서인 ‘관해기’는 미지의 세계인 바다로 가는 ‘유토피아행 티켓’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한말 이광로의 ‘관해일기’가 있다. 환갑이 다 되도록 평생 바다 구경을 한 번도 못한 그가 동지들과 계획을 구상하다가 1885년 8월 21일 드디어 칠포(七浦) 바다 구경을 하고, 바다는 말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장관이라며 감탄한다.
그에 비하면, ‘관해기’의 저자 주강현은 참 행복한 학자임에 틀림없다. 일생에 한 번 보기도 힘든 바다를 늘 누비며 발품을 팔았으니 말이다. 김정호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동여지도’를 그렸다면, 주강현은 미지의 공간인 바다와 섬을 늘 다니며, 들숨과 날숨을 호흡하는 생명의 바다, 인문의 바다, 생활문화사로서의 바다로 새로운 가치와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어도 과학기지와 제주도를 포함한 남쪽바다에서 출발하여 서쪽바다, 그리고 울릉도를 포함한 동쪽바다에 이르기까지 역사 민속과 해양문화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그에게 바다는 늘 새로운 이야기보따리다.
섬과 섬뿐만 아니라, 섬과 육지를 잇는 문화의 바닷길, 육지로부터 내몰려 섬에 정착한 ‘갯것’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 온 삶의 터전인 ‘바다 밭’은 어머니 품과 같은 정겨움을 갖는다. 거기서 만나는 바다 밑 수중세계의 황홀한 비경, 미역 소라 전복 등 다양한 해양자원과 그네들로 말미암아 삶을 살아가는 ‘잠녀’와 어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문헌자료에 현지 조사를 보태고, 취재를 바탕으로 저자 특유의 씨줄날줄로 엮어가며, 쓰이지 않은 해양생활민속의 역사를 복원해 낸다. ‘관해기’를 읽으면 바다가 새롭게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절망이 아니라 생명과 희망, 닫힌 바다가 아니라 열린 바다, 대륙사관이 아니라 해양사관, 소외된 변방이 아니라 바다 중심의 세계관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하여, 바다에서 올라온 미륵에서 민중의 이상을 찾고, 청해진에서 만나는 송징과 장보고에서 사라진 민중영웅의 복원을 기대한다. 제국의 불빛 등대를 바라보며 식민의 바다를 되새긴다. 신이 내린 황금그물 ‘돌살’이 내팽개쳐지는 현실에서 해양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그뿐인가. 썩은 두엄더미 속에서 썩혀 먹는 홍어의 과학성과 문화성에서 해양음식의 경쟁력을 확인케 한다.
김동전 제주대 교수 한국역사민속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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