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가 죽은 지 400년 가까이 흐른 1965년 상하이 당 정책실 연구원이었던 야오원위안(姚文元)이 당시 베이징시 부시장 우한(吳[)이 쓴 역사극 ‘해서파관(海瑞罷官)’을 비판하면서 문혁은 시작된다. ‘해서파관’이 겉으로는 역사물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대약진운동을 비판하다 실각된 국방부장 펑더화이(彭德懷)를 옹호하는 내용이라는 고발이었다. 문혁과 함께 해서묘도 파헤쳐졌고, 하이난 섬은 ‘주자파(走資派) 타도’를 외치는 문혁파의 공격 대상이 된다.
▷그 하이난 섬이 21세기 중국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보아오(博鰲) 포럼’ 때문이다. 보아오는 하이커우 공항에서 1시간 30분쯤 떨어진 휴양 도시. 원래 ‘보아오 포럼’은 1998년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밥 호크 전 호주 총리,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일본 총리가 아시아의 금융위기 타개책을 논의하기 위해 제안한 ‘아시아판 다보스 포럼’이었다. 하지만 당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노리던 중국은 2001년 제1회 포럼을 보아오에 유치하면서 이곳을 포럼의 영구 개최지로 만들었다.
▷어제 폐막된 제6차 포럼의 주제는 ‘글로벌 경제에서 아시아가 승리하는 길’이었다. 룽융투(龍永圖) 포럼 사무총장은 서남 및 중앙아시아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아시아 전체를 연결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시아를 ‘대(大)중화경제권’으로 재편하겠다는 뜻일까. 2004년의 주제는 ‘중국의 굴기(굴起·우뚝 일어섬)’였다. 해서의 하이난 섬이 미국 주도의 글로벌화인 이른바 ‘워싱턴 콘센서스’에 맞서는 중국의 ‘베이징 콘센서스’의 전초기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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