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한국 속의 버지니아’

  • 입력 2007년 4월 23일 19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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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재단 홈페이지에는 재외동포가 664만 명으로 집계돼 있다. 가장 많은 중국(244만 명)과 미국(209만 명)이 7년 전 통계이고 일본(90만 명)도 3년 전 숫자다. 그 사이에 줄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들은 한국과 세계를 잇는 가교 역할도 한다.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도 적지 않다. 지난주 미국에서 한 청년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 전까지는 우리 국민에게 꿈과 자신감을 심어 준 재외동포들의 이름을 가벼운 마음으로 부를 수 있었다. 물론 버지니아의 비극 때문에 동포들이 명예에 상처를 입거나 희망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착하고 근면한 한국인의 ‘아메리칸 드림’이 꺾여선 안 된다. 무엇보다도 그 청년의 가족이 부디 꿋꿋이 살아 주기 바란다.

사연은 다양하겠지만 한반도 밖에서 사는 동포가 700만 명을 헤아린다는 사실은 한민족의 진취성과 용기를 잘 증명한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출생지를 떠난 세계의 이민인구는 1억2000만 명 수준이다. 그것의 5∼6%가 한민족이라면 참으로 대단하다.

이처럼 외향적인 한국인이지만 ‘우리 안의 낯선 것’을 배척하는 배타성 또한 심하다. 11년째 한국에서 살았다는 미국인 스콧 버거슨(40)은 “많은 한국인은 ‘다른 것’을 두려워한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외계인 취급을 한다. 차이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리안 드림’이 恨으로 쌓이면

그는 최근 저서에서 이렇게 꼬집었다.

“한국인은 외국팀과 축구 경기가 벌어지면 민족의 수호자로 자처하면서도, 탈북자와 조선족을 차별한다. 한국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는 위선적이고 자기에게 좋은 쪽만 선택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천박한 민족주의다.”

문화인류학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의 ‘불확실성 회피지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낯선 것을 두려워하거나 배척하는 경향’이 아시아권에서 일본인 다음으로 심하다. 외국인에게 때로는 과잉 친절을 베풀지만 변덕이 죽 끓듯 한다. 버거슨은 우리나라를 ‘길거리에 나서면 매력이나 예의는 찾아보기 어려운, 차갑고 야만적인 사람들이 넘치는 곳’이라고까지 표현했다.

21세기는 세계적으로 ‘이민의 시대’다. 한국도 ‘코리안 드림’의 나라가 됐다. 결혼이민자를 포함한 외국계 인구가 100만 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호적에 오른 국제결혼은 3만9071건으로 전체 결혼(33만7528건)의 12%에 가깝다. 특히 농촌 총각은 열에 넷(41%)이 중국 동남아를 비롯한 외국인 여성을 맞이한다. 이들이 낳은 소중한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도 다니고 있다.

한국인이 기피하는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사업장의 구인난(求人難)을 적지 않게 해소해 주는 것도 외국인이다. 이들의 피땀 없이는 회사를 꾸려 가기도 어려울 업주가 이들을 박대한다면 우선 도리가 아니다. ‘너희 나라에서보다 더 많이 벌지 않느냐’고 말하기 전에, 내국인은 왜 ‘실업자로 남았으면 남았지 그 돈 받고는 일하지 않겠다’고 하는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2005년 프랑스 전역을 휩쓸었던 무슬림계 프랑스 청년들의 인종 소요 같은 사태를 국내에서 걱정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토종 한국인’이 ‘다민족 한국인’을 인정하려 들지 않거나 인종차별적 태도로 일관한다면 그 속에서 ‘시한폭탄’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흔히들 미국을 ‘멜팅 포트(melting pot)’라고 한다. ‘가지각색의 인종이 혼합돼 종교 문화 등 모든 다양한 가치를 녹여 미국적인 것으로 만드는 도가니 같은 곳’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세계 최강국의 힘이기도 하다.

배타성 녹일 ‘멜팅 포트’가 필요하다

그런 미국에서조차 ‘조승희’가 나왔다. 개인의 비정상적인 정신상태가 문제였다지만 ‘그가 외톨이로 학교 주변을 배회할 때 아무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반성론도 대두했다. 미국이 그 정도라면 한국은 오죽하겠는가 싶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는 월간 ‘신동아’ 5월호 인터뷰에서 “로마가 융성한 요인은 자유와 관용, 그리고 다신교였다”고 풀이했다. 자신뿐 아니라 타자를 존중하는 태도가 다인종,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라는 문명을 가능하게 했다는 얘기다. 로마는 정복당한 민족의 신(神)까지 모두 자신들의 신으로 모셨다. 로마의 신은 30만에 이르렀다.

한국에도 멜팅 포트, 배타성을 녹이는 가마솥이 필요하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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