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日위안부 강제동원 보고서’ 작성 美의회 조사국 래리 닉시 박사

  • 입력 2007년 4월 24일 03시 04분


코멘트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를 제시한 미 의회 보고서를 작성한 래리 닉시 박사. 그는 “강제동원의 증거는 충분하며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에 상정돼 투표에 부쳐질 경우 위안부 강제동원 규탄 결의안이 통과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를 제시한 미 의회 보고서를 작성한 래리 닉시 박사. 그는 “강제동원의 증거는 충분하며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에 상정돼 투표에 부쳐질 경우 위안부 강제동원 규탄 결의안이 통과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이번 주는 미국 하원에 제출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규탄 결의안의 향배에 큰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26일 미국을 방문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최근 며칠 동안 잇따라 ‘사과’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강제동원 증거가 없다고 강변하던 지난달에 비해 표변에 가까울 만큼 꼬리를 내린 채 사전정지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아베 총리 방미 이후 결의안을 본격 논의할 미 하원의원들 방엔 최근 의회조사국(CRS)이 작성한 공식 보고서가 배포됐다. ‘일본군 위안부 시스템’이란 제목의 23쪽짜리 보고서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논조를 유지하면서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과 일본 정부가 위안부 모집 및 강제동원에 직접 개입했음을 명확하게 논증했다. 이 보고서 작성자인 의회조사국 래리 닉시 박사와 인터뷰하고 그가 설명하는 보고서의 의미와 작성 경위를 들었다.》

“日 역사수정 움직임 미일동맹에도 악영향”

―미 의회에서 위안부 문제 보고서를 작성한 경위는 어떤 것인가.

“의회조사국 차원에서 결정됐다. 의회의 높은 관심 때문이었다. 일본의 과거사 이슈에 대한 의회의 관심은 지난번 의회 때부터 높아져 왔다. 2005년 헨리 하이드 국제관계위원장은 도쿄 전범재판의 판결을 폄훼하려는 일본 내 역사수정론자들에게 태평양전쟁 종전 60주년 결의안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 바 있다. 올해 1월 31일 마이클 혼다 의원이 제출한 결의안에 이미 70명(한인단체에 따르면 83명)이 넘는 의원이 지지 서명을 했는데 이는 대단한 수다.”

닉시 박사는 이 보고서에서 미군이 미얀마에서 발견한 한국 출신 ‘위안부’ 20여 명의 증언, 언더우드 박사가 미 정부에 보고한 일본군의 기록을 비롯해 수많은 자료를 인용했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네덜란드 정부의 공식 문서들이다.

네덜란드 국립문서보관소에 있는 1947년과 1948년의 네덜란드 전범 재판 기록에는 1942년 일본군이 인도네시아에 진주한 직후 군 감독 아래 네덜란드 여성들을 수용소에서 위안소로 끌고 갔다는 증언과 일본군 장교 심문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여러 명의 일본군 장교가 유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증거들의 존재를 일본 정부 지도자들도 알고 있지 않을까.

“네덜란드 문서들은 내가 찾은 게 아니고 일본 학자들이 발굴한 것이다. 아베 내각과 자민당 지도부가 이 문서들의 존재를 아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나로서도 그들에게 물어 보고 싶다. 근본적인 문제는 고노(河野) 담화가 나온 1993년 당시 미야자와 정부의 견해와 아베 정부의 견해가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미야자와 정부는 믿을 만한 증거와 피해자의 증언들을 ‘증거’로 받아들였는데 아베 정부는 이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제시된 것만으로도 일본군의 개입 및 강제동원 증거는 충분하지 않을까.

“아베 정부와 의회 지도부도 정부와 군의 개입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은 ‘위안부 모집이 군에 의해 수행되지 않았으며 강압적 방법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양한 나라 출신인 수많은 여성의 증언을 믿을 만한 증거로 받아들이면 그런 주장은 근거가 없어진다. 더 중요한 점은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대다수 여성이 위안소를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위안소에서 탈출한 한국인 여성들이 중-일의 전선(戰線)을 뚫고 중국 쪽으로 넘어와 미군 관계자와 인터뷰한 기록이 있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떠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위험한 탈출을 감행해 전선을 넘는 대신 한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미 의회가 이 문제에 갖는 관심은 인권이란 보편적 가치 때문인가.

“하이드 전 위원장은 2차 대전 때 필리핀에서 싸운 참전용사이며 톰 랜토스 외교위원장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량학살) 생존자다. 한편으로 일본 내의 역사수정 움직임은 장기적으로 미일 동맹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약 그들이 일본에서 계속 영향력이 커져 일본인들이 자신들은 전쟁 때 생긴 일에 책임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전쟁 책임은 누가 지게 되는가. 미국이 유죄가 된다. 이런 게 수정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런 태도는 미일 동맹에 더 위험할 수 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동안 일본 측이 신경을 썼을 것 같은데 로비는 없었나.

“약간의 접촉이 있었다. 그들은 아베 총리의 성명서 전문(全文)과 일본 측의 논리를 담은 자료를 보내며 문제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설명하려 했다. 외교위원회와 의원들에게도 같은 자료가 전달됐다. 그러나 나는 한국과 일본 어느 쪽으로부터도 압력을 받지 않았다고 자신한다. 일본 측도 나의 작업을 존중했으며, 압력이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결의안 통과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상임위와 본회의에 상정돼 투표에 부쳐질 경우 통과될 것으로 믿는다. 지난해 레인 에번스 의원의 결의안은 상임위에 부쳐진 시점이 중간선거를 앞둔 9월 말이어서 너무 늦었지만 이번엔 상반기 내 상임위에서 처리되면 본회의에 상정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그렇지만 투표에 부쳐질지는 랜토스 위원장과 낸시 펠로시 의장을 비롯한 지도부에 달려 있다.”

:래리 닉시 박사:

△67세, 미 의회 정책연구기관인 의회조사국의 아시아 문제 전문가 △동아시아와 미국 안보 문제를 주로 연구, 조지타운대 외교학 석사, 역사학 박사 △2002년 3월 현대의 금강산사업 대가 4억 달러 비밀 제공 의혹을 최초로 제기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