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답사기 30선]<18>중국문화답사기

  • 입력 2007년 4월 3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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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천은 시체가 즐비한 전쟁터이자 수레와 배가 왕래하는 낙토(樂土)이기도 하다. 또한 봉건시대 권력자들이 생명의 불을 환하게 밝히거나 꺼지게 했던 곳이자, 시인들의 위대한 생명력이 한껏 위세를 발휘할 수 있도록 비호하던 곳이기도 하다.》

중국 詩文과 풍경의 만남

중국 여행은 그들의 오랜 역사와 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크고 작은 도시와 향촌 곳곳마다 성벽과 원림(園林), 누각과 사묘(寺廟)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고, 심지어는 큰 바위 고목 하나까지 역사의 이끼 속에 서서 여행객을 맞는다. 그런데 그런 경관들이 빼어난 풍광, 역사적 사연만으로 거기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다녀간 시인묵객들이 그것들을 체험하며 써낸 다양한 시문(詩文)이 있어 그 유적들은 한층 깊은 문화적 의미를 자랑한다.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여행기가 여럿 있지만, 위추위(余秋雨)의 ‘중국문화답사기’가 특별한 것은 바로 이러한 문인들의 발자취에 대한 관심이 글 곳곳에서 시종 이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막의 변방이나 아름다운 강남 작은 마을 어디를 가든 그곳을 이름나게 한 시문이라는 문화적 배경 속에서 풍경들을 다시 바라본다. 대부분의 일반 여행기처럼 그곳 여행지의 생김새를 그려 보이거나, 독자들이 훗날 찾아갈 때를 위해 길 안내를 하는 일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그에게 산수 자연은 내내 ‘인문학적 산수’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여행기는 중국 문학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를 어느 정도 갖춘 독자가 맘에 들어 할 책이다.

관광버스 단체 여행부터 혼자서 떠도는 여행까지 여행의 방식은 여러 가지다. 이 책은 혼자 혹은 두셋의 벗과 터벅터벅 걸어 다니며 유람하다가 때로 생각에 잠기는, 그런 호젓한 여행길에 알맞다. 그는 사막과 산천, 강촌과 도시를 만날 때마다 학자다운 문화적 해석과 더불어 매우 주관적인 격정으로 그들을 그려 내고, 끊임없이 생각한다. 예컨대 ‘영혼을 울리는 사막과 푸른 샘물’에서 독자는 이 글이 끝날 때까지 저자가 어디를 여행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가 ‘산은 명사산(鳴沙山), 샘물은 월아천(月牙泉), 모두 둔황현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는 마지막 문장을 읽게 된다. 강남의 전통 마을 저우좡(周莊)에 대한 여행기 앞에는 바로 그 언저리에서 겪은 문화혁명 때의 고통스러운 개인적 체험이 놓여 있다.

저자의 이런 독특한 문화답사기 쓰기 방식은 이 책이 출간된 후 수백만 권이 팔릴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주된 요인이었다. 1990년대 초 출간 직후부터 전개된 ‘위추위 열기’는 폭발적인 판매량뿐만 아니라 이 책과 뒤를 이은 시리즈를 싸고 전개된 평단의 찬탄과 비판, 심지어는 매도에 가까운 공격으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은 그만큼 이중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전문 학자가 보기에는 상업성을 노린 ‘분 바른’ 모습일 수도 있고, 일반 독자들은 흥미로운 글쓰기로 아속공상(雅俗共賞·고상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함께 감상함)의 마당을 연 신선한 일로 여겨질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평가는 독자 자신에게 달린 셈이다.

이등연 전남대 중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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