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만큼 우리에게 가깝고 친숙한 문화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궁궐만큼 우리가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문화재도 없다. 그동안 궁궐을 단지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이 모여 있는 공간, 혹은 호사가적 관점에서 재미난 이야기가 가득한 곳으로 접근하고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궁궐박사’ 홍순민 교수의 궁궐 기행서 ‘우리 궁궐 이야기’는 역사적 실체로서 궁궐 읽기를 시도한 본격적인 대중서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점은 궁궐을 다룬 기존 책과 차별화된 부분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정치사를 공부하던 저자가 궁궐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유는 뭘까. “왕에 대한 기록은 굉장히 많으면서도 정작 왕이 어떻게 살았는가, 어떤 활동을 했는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왕의 구체적이고 세밀한 활동상을 알기 위해서는 왕이 활동하던 공간인 궁궐을 상세히 알 필요가 있었다”고 밝힌 집필 후기는 역사학자로서 궁궐에 대한 남다른 시각과 접근 방법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왕조사회에서 주권자이자 통치자인 왕의 활동무대인 궁궐은 곧 ‘국정운영의 최종 단계가 행해졌던 최고의 관부’였기 때문이다.
이 책이 지닌 미덕 가운데 하나는 저자가 직접 권하는 꼼꼼한 ‘입궐 채비(궁궐 멀리서 보기)’이다. 궁궐이 있는 서울과 도성, 궁의 종류와 궁궐의 짜임새 등에 대한 이야기는 궁에 발을 들여놓기에 앞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별도의 장을 마련해 궁궐 답사에 앞서 어떠한 안목으로 세 가지의 ‘사이-간(間)’, 즉 공간 시간 인간을 들여다보고 원형을 추적해야 하는지 강조하는 대목은 궁궐뿐 아니라 ‘깊이 있는 문화유산 답사’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견지해야 할 철칙임을 알려준다.
이 책 곳곳에서 저자가 ‘거침없이 시비’ 삼는 부분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이를테면 서울 종로구 세종로 교보문고 앞 ‘기념비전’을 ‘비각’으로 부르는 문제나 ‘백악산’을 ‘북악산’으로 부르는 문제, 경복궁을 왜 ‘정궁’이 아닌 ‘법궁’으로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용어 사용에 대한 시비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바른 인식의 출발점이다.
더불어 우리가 잘 몰랐던 일제강점기 궁궐 수난사를 펼쳐 들면, 이는 되풀이 되어선 안 될 문화재 수난사의 축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창덕궁 금천교 난간기둥의 작은 돌짐승처럼 지나치기 쉬운 궁궐 구석구석의 소품에도 애정 어린 시선을 주면서 ‘명품이 지닌 디테일의 맛’도 일러 준다.
강임산 문화재청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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