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중요하다면 건축가에게는 ‘작가 정신’의 구현이 중요하다. 건축가 김정후 씨의 이 책은 드물게 등장하는 건축비평서로서 우리나라 건축가들의 작업세계를 진지하게 성찰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건축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건축가들이 현장에서 겪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설파하며 그런 가운데서도 어떻게 좋은 건축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가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 건축 무엇이 문제인가요?” 저자는 이 구태의연하고 직설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는 다시 “한국 건축은 도대체 왜 이 모양인가요?”라고 물으며 한국 건축의 부정적 단면을 파헤친다. 저자는 그에 대한 대안을 찾아 제시함으로써 진단과 해법을 동시에 전달하는 쉽지 않은 길을 택하고 있다. 이 땅의 대다수 건축가가 입에 달고 사는 비평 부재의 현실까지 극복해보려는 당찬 시도를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비평가이기 때문에 종종 받게 되는 질문, “건축가 중에서 누가 좀 괜찮은가요?”에 대해 저자는 유명 건축가에서 신진 건축가에 이르는 취재원에 대한 고른 평형감각과 그들의 작가적 태도에 대한 비판적 검증 및 의미 부여의 과정을 거치며 종국엔 그가 상대하는 건축가 대부분을 비평가의 적으로서보다는 동지로서 네트워크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비평가로서의 그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의 글은 건축가 봐주기식의 주례사 비평 혹은 건축가의 작업에 대한 배타적 검열관의 지위를 버리고 건축에 대한 한없는 애정에서 출발하는 그의 오롯한 건축관에서 비롯된다.
‘한국에서 건축하기 쉬운가요?’ 전국적으로 새로운 모형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들썩거리는 통에 유사 이래 엄청난 물량의 건축 행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단연 건축가 저마다가 휘파람을 불어야 마땅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전체 건축사무소의 5%에 해당하는 대형 설계사무소와 그와 비슷한 수준의 외국 설계회사가 새로 조성되는 도시 건축 물량의 90% 이상을 독점하고 있다. 건축 생산에서의 부익부 빈익빈 쏠림 현상이 극에 달하고 있다.
저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건축가들과 이론가들에게 현재 우리 주변에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살피고 부닥치며 살길을 준비하자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저자는 건강한 건축이 탄생하기 위해선 그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건강한 건축주가 있었다는 데 주목하면서 작가 정신의 구현이 문화 수준의 계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강조한다.
전진삼 건축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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