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미학,건축이야기 20선]<2>건축예찬

  • 입력 2007년 5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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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사랑하라. 옛것과 새것 모두를. 우리의 느낌을 황홀하게 하며 우리의 영혼을 매혹시키는, 추상적이며 암시적이며 상징적인 그 형태로 인해, 우리 삶의 무대이며 기반인 건축을 사랑하라.》

스물 몇 해 전 이 책을 처음 읽고 한 줄기 벼락이 대뇌를 가로질러 간 듯 멍한 느낌에 빠졌다. 자기 내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진지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놀라운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삶과 문명, 우주에 대한 놀라운 영감으로 가득 찬 책, 수정의 메아리를 가진 책들이 불러내는 계시적 기쁨과 경이! 가스통 바슐라르의 ‘초의 불꽃’을 처음 읽었을 때,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를 읽었을 때,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를 읽었을 때, 김우창의 ‘궁핍한 시대의 시인’을 읽었을 때, 그랬다.

이 책은 건축에 관한 책이 아니다. 건축의 본질, 건축의 기능, 건축의 미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그것을 말했다면 그것은 우리가 건축을 사랑해야 할 까닭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왜 우리는 건축을 사랑해야 하는가?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건축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들을 열거한다. 건축은 광기와 야만을 잠재우고 기쁨과 행복에 눈뜨게 하는 문명생활의 기초적 토대이다. 지오 폰티는 건축이 시나 그림이나 음악과 마찬가지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완성을 향해 헌신한다고 말한다.

좋은 집들은 흠 많은 삶이 일으키는 불행과 혼란을 종식시키고 고요한 휴식과 꿈으로 초대한다. 그러니 상상력이 풍부한 건축가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그 상상력 때문에 공학의 실천자라기보다는 차라리 우주를 직관하는 시인이나 음악가의 부류에 더 가깝다. 건축가들은 돌과 나무와 유리라는 질료들을 상상력으로 버무리고 숙성시켜 건축이라는 교향곡을 만드는 예술가다. 건축은 재료들의 관현악적 편성인 것이다.

건축가들은 집과 학교들, 극장과 스타디움, 음악당과 도서관, 공항과 정거장, 교도소와 교회, 병원과 양로원을 짓는다. 모든 건축은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의 필요와 행복을 향한 열망들에 대한 응답이다. 건축가는 의사나 동화작가나 빵 굽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숭고하다. 좋은 집들은 건강을 지키고 인격을 고양시키며 “인간의 정신과 생활, 인간의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숙명의 영속성”을 노래한다. “건축은 수정(水晶)이다.” 그 수정에는 불가피하게 인간의 꿈과 욕망, 환상과 생활의 불일치, 혹은 부조화가 하나의 무늬로 새겨진다. 사실을 말하자면 건축은 제약들에 의해 규정되는 그 무엇이다. 건축가들의 진정한 상상력은 재료들의 제약, 비용의 제약, 물리적인 법칙의 제약 속에서 꽃피어 난다. 좋은 건축가들은 그 제약들에 대한 솔직한 숙고를 드러낸다. 그들은 안다, 건축을 완성하는 것은 신이라는 것을. 이 세상의 모든 건축물 내부에 드리워진 침묵과 빛은 그 건축에 대한 신의 최종적 인증의 표현이다.

지오 폰티에 따르자면 ‘분수는 하나의 목소리’고, ‘계단은 소용돌이’며, ‘발코니는 한 척의 범선’이고, ‘문은 한 장의 초대장’이다. 그는 건축 그 자체, 좋은 건축에서 흘러나오는 시와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교향곡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것들이 들려주는 그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되돌려준다. 이 책은 건축이 행복을 향한 인간의 오래된 열망의 결정체, 미적 탐닉의 역사, 잔혹한 결핍임을 증언한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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