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세우는 게 아니라 짓는 것이다. 밥을 짓고 농사를 짓고 시를 짓듯이 집은 지어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삶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즉 사는 방법을 만드는 것이 건축이라는 뜻이다.”
저자의 집에 대한 정의가 특이하듯 이 책은 매우 특별하다. 저자 승효상 씨는 널리 알려진 건축가다. 건축가는 도면을 그려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지, 책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책을 쓴다고 해도 자기 자신의 작품집을 만드는 정도이다.
반면 이 책은 ‘승효상이 만난 20세기 불멸의 건축들’이란 부제와 같이, 주로 유럽에 있는 16개의 ‘명작 건축물’을 소개하고 자신의 소감을 적은 책이다. 그렇다고 흔한 여행기나 답사 안내서는 더욱 아니다. 20세기의 명작들을 빌려 자신이 깨달은 진실과 가치들을 격정적으로 고백하면서, 해박한 지식과 깊은 성찰을 통해 얻은 교훈을 전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엄선된 명작 건축을 만나는 즐거움도 크지만 저자의 탁월한 해석과 건축적 사유 세계에 빠지는 행복은 더 크다.
승 씨는 자타가 인정하는 이 시대 최고의 건축가인 동시에, 건축과 도시를 넘어 사회 문화적 현상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합리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지식인이다. 그는 학자보다 더 정확하고 폭넓은 지식을 소유하고, 여느 저술가보다 더 명쾌하고 감동적인 책을 쓴다. 그의 건축가로서의 탁월함이나, 지식인으로서의 성숙은 순전히 독학으로 이루어졌다. 적지 않은 부분은 위대한 건축의 현장에서 배운 것들이다. 호르헤 보르헤스의 말처럼 “건축은 대지라는 넓은 도서관에 소장된 한 권의 책이다.” 결국 저자는 16권의 ‘텍스트’를 요약 해석해서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르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 미스 반데어로에의 ‘베를린 신 미술관’, 루이스 칸의 ‘소크 연구소’에서는 20세기 대표작들의 시대적 전형과 위대한 성취를 볼 수 있다. 저자의 깨달음은 널리 알려진 대가의 작품에서만 얻어진 것은 아니다.
파리 라데팡스 지역에 세워진 ‘그랑 아르슈’에서는 비움과 여백의 미학을, ‘퐁피두센터’에서는 상상을 전복하는 반(反)건축을, 프랑크푸르트의 ‘쉬른미술관’에서는 로마부터 현대까지 축적된 역사의 흔적을 발견한다.
필자가 동행한 여행길, 유럽의 한 건축물 안에서 승 씨의 짤막한 한탄이자 독백을 들은 적이 있다. “웬 세상에 이렇게 고수가 많아? 천지가 깨달음투성이로구먼.” 고수만이 고수를 알아본다고 할까? 타인의 작품들에서 깨달을 줄 아는 그가 진정한 고수였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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