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나무처럼 자라고 들꽃처럼 피어난다고? 아이처럼 커 나가 노인처럼 늙어 간다고? 건축가 임형남 씨의 ‘나무처럼 자라는 집’은 제목부터 우리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에게 집은 영혼과 생명과 숨결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흙이나 나무처럼 숨을 쉬는 친환경 재료로 된 집이라서가 아니다. 내부를 실크 벽지로 마감한 ‘무늬만’ 숨쉬는 집이 아니라 내외부 공간이 서로 숨쉬듯 호응을 하고 동네의 집들과 호흡을 하는 집이기 때문이다. 이 건축가는 ‘자연을 입힌’ 부자연스러운 집이 아니라, 생물처럼 시간이 지나면 자라고 늙는 ‘자연스러운 집’을 꿈꾼다.
건축가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는 흥미롭다. 그는 깊이 있으나 평이하고 소박한 문체로 공간과 자연을, 문명과 인간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건축가란 없다’는 역설적인 주장을 만나게 된다. 건축가는 집주인의 이야기를 정리해 주는 사람이고 집은 집주인이 스스로 지어야 한다고 말이다. 모기장 하나도 우리 손으로 달 수 없는 이 시대에 자신만의 집짓기를 포기하지 말자고, 자신의 집은 자신이 키우자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려는 듯, 제천 상산마을 김 선생님의 집짓기 과정을 설계부터 완공 이후까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후반부의 이야기는 특히 매력적이다. 건축가가 집주인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집을 그리고, 만들고, 사유하고, 수정하는 과정에 함께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우리는 건축가가 집을 짓는 일을 위해 무엇보다 땅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풍경의 퍼즐을 맞추어 나가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세상과 사람의 ‘속도’를 고려함을 알게 된다. 설계란 출발지와 도착지 두 지점만 표시된 ‘약도’를 들고 길을 나서는 일임을. 건축가는 설계 도면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집을 짓는 일을 중요시하며 기둥과 마루가 전하는 나무의 감촉, 시간의 저린 느낌을 담고자 한다는 사실을. 그렇다.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은 기하학적인 공간을 초월한다. 일찍이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소리나 향기가 고유한 색깔을 갖고 있고, 감정이 무게를 지니고 있듯이 공간은 공간만의 고유한 가치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조윤경 이화여대 교수 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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