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매번 이런 칼럼을 쓰려 할 때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이 도와주지 않는다. 우리는 중국에서의 고문과 탈법적인 구금에 불평할 자격이 있는가. 우리 미국인들이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똑같은 일을 저지르고 있는데 말이다.
몇 년 전 중국 윈난(雲南) 성에서 나눴던 설전이 잊히지 않는다. 필자는 중국 관리에게 중국에서 자행되는 고문과 투옥을 비난했다. 그는 반박했다. “우리는 문화혁명의 격변 속에서 수십만 명의 목숨을 잃었소. 만약 당신네 미국인들도 혼란의 위협에 직면했다면 똑같이 했을 거요.” 그때 필자는 “그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이제 필자는 그에게 사과하고 싶다. 그가 옳았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2001년 9·11테러로 위협을 느끼게 되면서 우리는 재판 없이 사람들을 구금했다. 곳곳에선 구타가 만연했다. 아부그라이브, 바그람, 관타나모 등지의 수용소에서 수감자 110명 이상이 사망했다.
만약 여기서 리 씨의 이야기를 꺼낸다면 중국 관리들은 “당신네들은 위선자요, 우선 당신들 눈 속의 들보를 보시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리 씨의 불행은 1994년 가을 남편이 국영 광산에서 크게 다쳤을 때 시작됐다. 광산 측은 재해 보상은커녕 곧장 리 씨의 남편을 해고했다.
리 씨가 지방정부에 항의하자 리 씨도 해고됐다. 리 씨는 중앙정부에 호소하기 위해 몇 번씩 베이징(北京)으로 향했지만 그때마다 경찰은 그를 체포해 고향인 지린(吉林) 성으로 돌려보냈다.
그는 두 번이나 강제노동수용소에 수감됐다. 영국 기자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려다 들켜 1년 동안, 정부 지도자와 접촉하려다 18개월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관리들은 그를 남성 경찰관 앞에서 발가벗기고 정신병원 침대에 묶었다. 주사를 놓아 혼수상태에 빠지게 하기도 했다. 심하게 구타당해 아직도 목발 없이는 걸을 수도 없다. 그러나 그를 가장 분노하게 만든 것은 관리들이 그의 아이들까지 괴롭힌 것이었다.
관리들은 맏딸 왕링리 씨의 대학 입학을 허가하지 않았다. 왕 씨는 겨우 대학에 진학했지만 병상의 아버지를 돌보는 그로선 등록금을 낼 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12세인 막내딸은 보육원에 보내졌다. 리 씨의 가슴은 찢어졌다. 나는 리 씨와 인터뷰할 때 내 아이들을 데려왔는데 그는 자신이 얼마나 딸을 그리워하는지 말하며 필자의 딸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미국에도 또 다른 리 씨가 있다. 5년 이상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알자지라 방송의 카메라맨 사미 알하지 씨다. 그는 구타의 고통으로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그가 언론인이 아니며 테러에 관련됐다고 하지만 증거를 내놓지 않는다. 심지어 심문관들은 알하지 씨에게 알자지라로 돌아가 스파이 노릇을 하기로 약속하면 당장 풀어 주겠다는 제안까지 했다고 한다.
부시 대통령, 알하지 씨와 같은 수감자들에게 그들의 권리를 돌려주시오. 그래서 세계 각국의 인권을 변호할 도덕적 권위를 미국에 돌려주시오.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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