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후지와라]동아시아 위협하는 ‘안보 딜레마’

  • 입력 2007년 6월 15일 03시 01분


두 개의 국가, A국과 B국이 있고 특별히 우호적이지도 적대적이지도 않은 관계라고 하자. 이 경우 A국이 B국에 대해 취할 안전보장정책이란 뭘까.

우선 상대가 우호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가정해 전쟁 준비를 하지 않고 무기를 비축하지 않는 선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혹 상대가 우호적이지 않다면 상대는 전쟁 준비가 돼 있는데 자국은 준비되지 않은 불리한 처지가 된다.

따라서 A국에 있어서 합리적인 선택은 B국은 적대적일 것이라 가정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B국도 A국은 적대적이라고 가정하고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상대가 적대적이라는 가정은 상대가 실제로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면 적대적임이 사후에 입증되고 그것이 또 적대 행동을 유발한다.

이렇게 당초 우호적이지도 적대적이지도 않았던 양국은 서로 합리적인 행동을 취하는 한 적대관계에 빠져 버린다. 이것이 국제정치의 이론에 있어서 ‘안보 딜레마’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안보 딜레마는 냉전기 미소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되던 개념이지만 지금도 유효하다. 그야말로 지금 동아시아에서 두 가지 안보 딜레마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안보 딜레마는 미중 관계에서 볼 수 있다. 현재의 미중 관계는 아마도 미중 국교 회복 이후 가장 장기간에 걸쳐 안정돼 있다. 덩샤오핑 이후의 중국은 대미 관계 악화를 신중하게 피해 왔다. 중동 이라크에서는 전쟁에 호소한 조지 W 부시 정부가 대중 정책에서는 신중한 리얼리즘을 관철해 왔기 때문이다. 북한을 둘러싼 6자회담 협의에서 양국이 긴밀하게 연락을 해 온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국은 중국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미사일방어 계획을 진행하고 중국은 항공모함의 도입을 시작하는 등 대규모 해군력 증강을 추진하고 있다. 오른손과 왼손이 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양국 모두 분명하게 상대를 적국이라 설정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전을 위해서는 현재의 안정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책이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안보 딜레마라 할 수밖에 없다.

제2의 안보 딜레마는 일중 관계로 미중 관계보다 심각한지도 모른다. 한쪽에서는 일중 간 우호를 나타내는 일이 많다. 이미 중국은 일본의 최대 무역상대국이 돼 있고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긴장해 온 양국이 아베 신조 총리의 베이징 방문 뒤 급속히 호전됐다. 중국의 경제 발전 덕에 전통적인 정부 개발 원조는 분명 줄었지만 일본에 의한 기술 협력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의 에너지 개발이나 환경보전은 일본의 기술 협력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호 분위기 속에서 양국 간 위기감도 여전하다. 중국에 의한 가스전 개발은 일본과의 긴장을 높이고 센카쿠열도 영유권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중국의 해군력 증강은 미국 이상으로 일본에서 중국에 대한 경계를 강화시킨다. 물론 중국은 일본의 군비 증강을 자국의 군사력 확대의 근거로 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중국의 군비 증강에 대비할 필요성이 미일 방위협력의 근거가 되고 있다.

미중 관계가 안정돼 있다거나 아베 정권 이후 일중 관계가 안정됐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미중 간에도 일중 간에도 당장 지금 전쟁의 위기가 닥쳐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각국이 신뢰 구축이나 군비 관리를 하지 않고 서로가 무력 증강을 서두르면 이 두 가지 안보 딜레마가 심각한 분쟁을 부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동아시아의 안정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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