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캠프 에드워드의 땅속

  • 입력 2007년 6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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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대의 미군 기지가 있던 필리핀 수비크 만(해군)과 앙헬레스 시(공군). 1992년 미군이 철수한 뒤 15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후유증을 겪고 있다. 특별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돼 공단, 골프장, 면세점이 속속 들어섰지만 ‘달러의 도시’라는 옛 명성에 걸맞은 활력은 되찾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개발을 위해 땅을 파는 곳마다 폐유, 중금속, 석면 등에 오염된 쓰레기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점이다.

▷필리핀은 미국과 철군 협상을 하면서 환경오염 치유에 관한 조항을 넣지 않았다. 협상을 잘못한 원죄 때문에 오염 사실을 모른 척하던 필리핀 당국도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미군이 캡콤 지역을 오염시킨 사실을 2000년에 확인하고 책임을 물으면서 두 나라가 함께 치유에 나서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버스 지나간 뒤 손드는 격’이었다. 미국은 오염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그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이 경기 파주시 캠프 에드워드를 현장 조사했다. 땅을 파헤치자 석유 냄새가 진동하고, 퍼 올린 지하수를 솜에 적셔 불을 붙이자 활활 타올랐다. 주한 미군이 반년 동안 지하수 속의 기름을 제거하는 ‘바이오슬러핑’ 작업을 했다는데도 이렇다. 미군은 올해 한국에 반환하는 9개 기지 중 5곳에 대해서는 ‘규정에 없다’는 이유로 우리 정부의 확인 작업을 거부했다.

▷우리 국민은 주한 미군에 의한 환경오염에 대해 국내 요인 때문에 생긴 환경문제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1300만 명이 관람했다는 영화 ‘괴물’은 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무단 방류해 돌연변이 괴물이 태어났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실제로 몇 차례의 기름 유출 사고가 반미(反美)운동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미군기지 오염문제도 제거 작업을 대강대강 해치운 미군 탓이 크지만 치유 기준을 처음부터 명확히 하지 못한 우리 정부의 책임도 크다. 반환 절차도 끝났으니 이젠 우리 돈으로 치유해야 할 처지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안보를 위해 주둔해 온 미군의 환경오염 행위를 반미와 연결하려는 움직임도 ‘의도의 불순성’을 의심받을 만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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