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 발전의 양대 견인차는 수출과 건설이었다. 1965년 태국의 고속도로 건설 공사를 따내면서 해외로 처음 진출한 건설업계는 1981년에 이르러 수주액 규모에서 미국 다음인 세계 2위로 떠올랐다. 중동 건설 붐은 해외 진출 근로자들의 숱한 사연을 낳았다. 가족과 눈물로 이별하고 사막으로 떠난 아버지들은 자랑스러운 건설 역군이요, 애국자였다. 몇 해 고생해 목돈 장만의 꿈을 이룬 사람이 많았다. 해외 근로자들이 땀 흘려 송금한 달러는 부자 나라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됐다.
▷건설산업은 전쟁의 폐허 위에 고속도로 지하철 항만 주택을 단기간에 만들어 냈다. 국내외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뤄 냈지만 압축 성장의 그늘도 드러냈다. 1994년 성수대교, 이듬해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건설업은 해외 건설에 재도전하면서 위기 탈출에 성공했다.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두바이에서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세계 최고층으로 기록될 160층(700m) 빌딩을 짓고 있다. 지난해 해외 수주액은 165억 달러(15조6000억 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어제는 건설산업 60년을 기념하는 ‘건설의 날’이었다. 지나 온 길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이 앞선다. 기술과 인력의 질이 중시되는 건설산업은 미래에도 한국인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다. 빈손으로 시작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던 도전정신과 근면성을 계속 발휘한다면 말이다. 건설인들의 땀에 감사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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